냉장고 파먹기

by 우선열



비빔밥이다

커다란 양푼에 냉장고 속 남은 음식물을 모아 담고 고추장 한 숟갈을 넣으면 모든 음식은 고추장 맛으로 하나가 된다.

참기름 한 바퀴 돌리면 완전한 일품요리, 가족 모두 흡족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냉장고 속 남은 음식을 가장 맛있고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다.


음식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채소들은 볶음밥의 재료가 된다

남은 채소와 고기를 알맞게 썰어 밥과 볶아 놓으면 채소들의 색에 따라 색동옷 같은 예쁜 볶음밥이 된다

볶음밥은 기름이 재료에 얼마나 잘 스며 들었나에 있다

기름이 잘 코팅된 볶음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기름에 튀기면 고무신도 맛있다고 한다

남은 밥과 채소 자투리로 만들었지만 볶음밥은 훌륭한 요리가 된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커다란 양푼 비빔밥이나 볶음밥을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할 만큼 맛이 있었다

양푼 가득한 비빔밥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곤 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었건만 남은 음식은 없었다


아껴 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바꿔 쓰자,

절약이 몸에 밴 시절이었지만 음식만큼은 넉넉히 장만했다

내 식구 먹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 구석구석 음식접시를 돌렸으며 지나가는 걸인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손 큰 며느리는 집안의 자랑이었다.

배고픈 설움을 알고 있었기에 생긴 풍습이 아니었을까 한다

조금 살림살이가 넉넉해진 후 가장 많이 듣던 말은 "먹을 만큼만 장만하라'였다

내식구 먹을 만큼만이 되면서 이사 떡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사를 오면 동네방네 떡을 돌리곤 했다

모처럼 떡을 맛보며 새로운 이웃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시절도 있었건만

먹거리가 많아지면서 이사 떡이 귀찮게 되고 대문은 굳게 닫혔다

같은 복도를 사용하고 있건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있다


냉장고가 보급되어 음식물 저장이 옛날보다 좋아졌건만

변변한 음식 저장고가 없던 시절보다 음식물 쓰레기는 더 많아졌다

냉장고 파먹기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마치 냉장고가 음식물 쓰레기의 주범이 되는 것 같다


대가족 시대의 자투리 채소나 남은 음식물은 비빔밥이나 볶음밥 등으로 처리가 쉬웠지만

핵가족이 된 후에 남은 음식물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먹는 것보다 구입하는 양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장구조이다

1인용 포장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같은 가격이면 많은 양이 좋다.

1인 가족 음식물 쓰레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자투리 채소를 말리거나 피클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혼자 먹는 음식은 줄지 않는다

애써 만든 음식을 버려야 했다.

'차라리 재료 상태로 버리고 말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냉장고 파먹기'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의 노력보다는 사회제도나 소비무노하가 함께 변해야 한다

노인 복지관 식사는 한 끼 2천 원이다

이천 원이지만 맛있고 건강한 식단이다

학생들에게 천원 아침밥 식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말도 있다

대가족처럼 같이 모여 식사를 하면 재료도 알뜰하게 쓸 수 있고 남은 음식도 줄일 수 있다

'먹으면서 정이 든다'하니 이웃 간에 굳게 닫힌 빗장도 풀릴 수 있다

냉장고 파먹기 이제는 내 냉장고가 아니라 모두의 냉장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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