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86

55년생 명희씨 5

by 우선열

어머님 기일 탓인지

그녀의 막말 탓인지 아버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술을 먹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셨다

아버지의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파출소에서 풀려나올 때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맹세를 수없이 해댔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큰 동생의 남자 친구가 집에 인사를 오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가 있다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엄마 안 계신 것도 흠 잡힐 일인데

사돈될 집안에서 아버지에 대해 아시면 좋아하시겠냐고요'

불쌍한 동생 시집살이까지 시키고 싶으세요"

가슴에 대못 박힐 말들만 골라 한 듯했다

술이 깨신 연약한 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했다

명희 씨는 아버지의 괴로움을 인정하기 전에

다시 음주가 시작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가여운 동생들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가 조금은 더 자제를 해보실 거 같았다

마침 대학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안정된 취업을 한 첫째 동생이

사내연애로 제부가 될 사람을 선보일 무렵이었다

술 취한 아버지보다는 없다고 하는 게 맘 편할 거 같다고 포악을 떨었다

그 모진 말들에 아무 대꾸도 없는 아버지에게

입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마지막 말까지 하고 말았다


술 없이 몇 날을 잘 버티시더니 정신이 드신 것 같았다

일자리를 찾아 보시겠다고 집을 나섰다

한 번쯤 말려 보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간신히 몸을 가누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다시 술을 찾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아버지는 영영 돌아 오시지 못했다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미처 달려오는 커다란 화물차를 보지 못하신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보다 명희 씨가 퍼부은 말들이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를 사지로 몰아넣은 게 자신이라는 죄책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동생들이 힘이 되었다

돌아가며 만용실을 지키기도 하고 기진맥진한 명희 씨를 보살폈다

첫째 동생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 4년을 다니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에 보태고

밖으로 도는 명희 씨 대신 집에서 동생들을 살뜰히 거두던 동생이다

이제 막 취업도 하여 가정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언니가 애를 썼으니 당분간 자신이 가정경제를 책임지겠다며

당분간이라도 언니가 편안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명희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 전 어렵게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낸 동생이다

자신이 방심한 동안 동생은

다른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노릇은 나 하나면 된다

명희 씨는 강하게 못을 박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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