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는 새벽

by 우선열


새벽 네시 기상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간단한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는다

물리적으로 책상 앞에 앉는 일은 꼭두각시처럼 자동화되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책상 앞에 앉는 것까지야 루틴이 되었다고 할 만하지만

책상 앞에 앉았다고 누에가 실 뽑듯 글이 술술 써지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기존 작가들조차도 창작의 고통을 출산의 고통에 견주기도 한다

글쓰기 연습을 자처하는 초보 에겐 하얀 컴퓨터 화면이 결투를 신청하는듯하다

하릴없이 눈싸움을 하며 버티곤 한다

어쨌든 첫 문장을 써라,

어차피 초고는 쓰레기이다,

한 글자라도 써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고칠 수 있다

헤밍웨이도 바다와 노인을 수백 번 고쳐 쓴 것이다

첫 문장을 써야 한다는 선배들의 주옥같은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건만

여전히 컴퓨터 화면은 하얗다

이럴 때 나는 꿀물을 마신다

처음엔 커피였다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주하면 새로운 정신이 들고

쌉싸롬한 커피 맛에 활력이 솟아나는 듯했지만 건강이 문제였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글쓰기를 하기 위해선 영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까짓 질병쯤이야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리 달콤하지 않다.

마음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건강한 신체에 간 강한 정신, 몸이 건강해야 글도 쓸 수 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천재적 소질이 없는 한 단장의 고통을 이겨내는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

이제 시작한 글쓰기 연습생이니 꾸준히 쓰며 버텨야 한다

열심히 쓰다 보면 한 번쯤 홈런을 날릴 수 있고 홈런이 루xls이 되는 날도 오고야 말 것이다

달콤한 상상을 하며 꿀물 한 잔을 마신다

꿀물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면 팽팽한 활시위처럼 곧추섰던 의식이 잠시 느슨해진다.

하얗게 날 서있던 컴퓨터 화면이 조금 친근해진다

"명작을 쓸 것도 아니잖아, 그냥 써" 마음이 말을 한다

컴퓨터 화면에 낙서 같은 검은 글씨들이 늘어간다

달리기 시작선에 선듯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달리는 쾌감을 느낀다.

하이 러닝의 경지라 한다지만 초보 연습생에게는 그런 경지가 쉬울 리 없다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고, 들 꽃에 한눈을 팔기도 한다

출발은 했건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이럴 때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진다

위장에 좋다는 꿀물로 위를 달래 놓았으니 위장장애도 예방한 셈이다.

마음 놓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이리저리 해찰하던 마음을 다잡는 커피 한 잔이다

낙서 같은 글들을 제자리에 놓으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기어코 글 한 꼭지를 완성하고 만다

완성이라지만 완성은 아니다

이제부터 다듬는 지난한 시간이 계속되어야 한다

책상 앞에서 해방될 때까지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 한다

내일도 모래도 책상 앞에 앉는 내루틴은 계속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