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84

55년생 명희씨3

by 우선열


원장은 단정하게 묶여 올렸던 머리카락을 풀었다

풍성하고 윤기 있는 머릿결이 파도처럼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커피잔은 들고 창가로 가는 옆모습이 같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듯이 아름다웠다

"이마가 올리비아 핫세를 연상케 하네,

원장님 머리 묶었을 때와는 다른 매력이야,

내가 남자라도 반하겠는데 "

"엄마, 닮았대요 팔자도 엄마 닮은 딸이고 "

"타고 태어난 미녀가 팔자라면 여자로선 최고 아닌가?

왜 타령처럼 들리지?"

"그랬나요? 아버지와 다섯 동생을 돌봐야 했으니까요

가꿀 수 없는 미모가 거추장스럽기도 했어요 "

"뭐야? 가꾸지 않아도 예쁘다는 말 같은데?,

어머님이 대단한 미인이셨나 보네, 대뜸 엄마 닮았다니,

팔자가 엄마 닮았다는 얘기는 뭐야? "

프라이버시 침해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마다 간절하게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빈틈없어 보이던 원장이 곁을 내보일 정도라면

나 아닌 누구라도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 사실 며칠 후면 아버지 기일이에요

많이 미워했는데 결국 나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평생 죄인입니다

나가 죽으라고 폭언을 퍼붓던 아버지도 안 계시니까 그 자리가 크더라고요

소녀 가장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고아라고 무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술 주정으로 살림을 때려 부수더라고

곁에 계셔 주실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지만

그때는 갓 스물 어린 나이에 술 취한 아버지를

파출소에서 데리고 오는 일이 죽기 보다 싫었어요

하루 종일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친 몸으로

파출소에 불려 가야 했으니까요

두 살 차이긴 했지만 차마 동생을 파출소에 보낼 수는 없었어요

어머님이 돌아가시며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와 동생들을 부탁한다고

아직도 귀에 쟁쟁한 엄마 유언입니다 "



유난히 금술 좋은 부모 사이에서 명희 씨와 5자매는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능한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가 포목 장사를 하며 가정경제를 이끌어 가고

착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껏 도우시며

그 흔한 아들 타령 한번 한 적이 없으셨다

포목 장사도 잘 되는 편이라 태평성대를 누리던 행복한 시절이 무너진 건

누구도 예기치 못한 화재 때문이다

누군가의 담뱃불 불씨에 엄마의 포목점은 형체를 알 수 없이 타버렸고

당시에는 보험이라는 안전장치도 없었다

졸지에 거리로 나앉게 된 형국이었다

충격을 버티지 못한 어머니는 몸져 누우시고 며칠을 버티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그녀를 불러 앉혀 아버지와 동생들을 부탁했다

20살 꽃 같은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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