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5년생 명희 씨 7
둘 다 독신이라는 이유로 명희 씨와 나는 급속히 친해질 수 있었다
다섯 동생도 만날 수 있었고
첫째 제부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가족끼리의 스키장 나들이에 내가 끼어들기도 했다
다섯 동생들은 하나같이 티 없이 밝았다
고통과 걱정과 갈등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몸에 밴 습성이었다
그런 여섯 미녀 속에서 나는 미운 오리 새끼 같았지만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살가운 태도들이었다
한꺼번에 여섯 여동생을 얻은 기분이었다
명희 씨는 평소에는 잘 익은 배처럼 사근사근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서릿발 보다 무서웠다
2살, 4살 차이인 거의 또래 동생들이 언니의 말 한마디에 순종하는 모습은 그냥 되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들과 아버지를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유언이 사슬이었고아버지의 죽음이 그녀를 묶어 버렸다
스스로 꽁꽁 묵힌 채 살아가는 그녀였다
나와 동생들은 암암리에 그녀의 사슬을 끊어내는 일을 모의하기 시작했다
막냇동생이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일단은 그녀가 짊어지고 있던 경제적인 짐에서는
어느 정도 놓여 날 정도는 되어 있었다
심적인 부담감만 좀 덜어내어 주고 싶었다
동생들의 행복한 모습이 그녀의 유일한 낙인 그녀에게
그녀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막 운전면허를 따 도로연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운동신경 둔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연수 과정 동안 차에 동승을 꺼렸다
명희 씨만이 기꺼이 동승을 허락하여 명희 씨가 쉬는 날이면
우리는 서울 근교의 맛 집을 찾아다니며 운전연수를 받곤 했다
미용실에 갇혀 있던 명희 씨의 얼굴이 티 없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다가 우리는 동해안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겁 많은 초보운전자가 여름휴가를 맞아 체증을 앓고 있는 영동고속도로를 탄 것이다
12 시간을 거리에 소비하며 천신만고 끝에 동해안에 도착하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녹초가 된 우리들은 텐트 앞에서 망연자실 제부를 그리워했다
월차까지 내며 우리의 보디가드를 자처한 제부를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라며 물리쳤던 참이었다
미녀에겐 야수가 따르는 법이던가?
옆 텐트의 준수한 청년들이 발 벗고 나서니 뚝딱 텐트가 세워졌다
해변가의 낭만적인 밤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