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2일 중앙일보 기사에 통영 사량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사량도'란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언젠가는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사량도를 처음 안 것은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그리움을 위하여'를 통해서 이다
먼 남해의 사량도로 재혼을 해간 이종사촌 동생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수채화처럼 담담히 써 내려간 작품이었다
그 소설을 읽은 후 사랑도가 아닌 사량도는
언젠가는 가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한 곳이 되었다
버킷리스트라고 말은 하지만 나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서인지 꼭 하고 싶은 일이 없는 편이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감해지는 건 순간순간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하지만 곧 잊고 말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는 습관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는
하고 싶은 일들을 그때그때 해야 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여우의 신 포도처럼 미리미리 포기하는 지혜를 배웠기에 어렵지 않게 살아왔다
부족한 시대를 살던 우리 세대사람들에게 체념이 삶의 지혜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단체 음식을 주문할 때도 자장면 통일, 설렁탕 통일, 이런 식이었다
커피 하나를 주문할 때도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라테. 캐러멜 마시야도.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중에 샷 추가, 시럽 추가를 덧붙이는 개인 취향을 존중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주문 방식은 생각조차 못 했다
대부분 아무거나 통일을 외치곤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찾았고 단체를 위해서 개인은 당연히 희생해야 했다
오빠를 위해서 가발 공장에 간 누이들이 있었고
동생들을 위해서 월남 전쟁이나 사막에 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던 오빠들이다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하던 시대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당연히 뒤로 밀리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버킷리스트를 물어 올 때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
지레 포기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리 불행한 줄 몰랐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을 하지는 못했으나 늘 바쁘게 살았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신의 취향을 한껏 즐기며 사는 것 같다
샌드위치 하나를 고를 때에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재료를 하나하나 골라 넣는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파트에 영끌로 올인했는데 빚투성이가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이생망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한다
꿈을 잃은 세대라 한다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될 수 있는 불행한 세대라는 말도 있다
내 자식이 불행한 세대를 살고 있다 하니 목이 멘다
다시 자식을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할 듯하다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퇴직 후에도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대부분 험한 일자리는 60대 이상 노인 일자리라 한다
단칸 셋방에서 첫 살림을 나며 열심히 일궈놓은 살림이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다시 빈 주머니가 되고 만다
젊은이들은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하는 것이 정답인듯하다
욕심껏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 빚을 못 갚겠다고 아우성이다
젊은이들을 못살게 내몬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시대가 다르니 젊은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시대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이 옳다
우리 시대처럼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림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시대를 초월하여 자신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단칸방 대신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했다면 거기에 따른 손실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아파트 혜택은 누리고 감당해야 할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를 살 건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선택했으면 책임질 일이다
문제는 부모들이 자식의 선택을 막는 일이다
부모가 대신해 주는 일, 부모 찬스라는 말이다
언제까지 자식 대신 살아 줄 수 있을까?
부모의 역할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라 살 수 있도록 자립심을 길러 주는 일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 수 있도록 부모 찬스가 아닌 자립심을 키워주어야 한다
아파트 대출을 받았으면 자신이 갚아야 하고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쌓아 올리는 기쁨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식들을 위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우리의 삶도 이제는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잘 사는 게 내 삶의 보람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자식들이 불행한데 내가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불행을 헤쳐나가야 행복의 참뜻을 알 수 있고
행복을 느끼는 건 불행을 겪어 보아야 한다는 걸,
자식들을 과보호해서는 안 되고 독립된 자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아온 세월을 이제는 보상받아도 되지 않겠는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돌아보아도 되지 않겠는가
남은 세월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
부족하다면 당당히 요구할 수도 있다
지나온 세월만큼 쌓은 공덕이 있다
박원서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막연히 가고 싶었던 사량도는 사랑이 있는 섬이었다
은퇴 후 사랑하던 동반자를 잃은 두 노인들이 다시 사랑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아름다운 사랑을 경험했기에 사랑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까지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사량도는 조용한 섬이지만 꽤 높은 산이 있다고 한다
아직 산에 오를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을 때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
인생을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미뤄오던 하고 싶은 일을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노을처럼 인생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노년이었으면 좋겠다
사량도에 가는 일로 나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