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92

54년 경자경자씨 3

by 우선열

   비어 있던 내 상가는 세입자가 들어오는 대신 분양가에 재판매가 되었다

홀가분하게 나는 상가를 떠나게 되었지만 경자 씨와 셋째와의 우정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경자씨가 가끔 셋째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서운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경자 씨는 사우디에서 귀국한 남편의 일자리를 위해 정성 들인 문방구를 처분하고

남편을 위해 지입 관광버스 사업에 손을 댔다가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되었다

작은 자본으로 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던 경자 씨는 우리 친정 동네 시장의 떡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내외 모두 성실하니 가게는 불 일듯 일어났다

학원을 경영하고 있던 내게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맡기고 학부모 자격으로 찾아 오기도 하였다

과묵한 그의 남편은 말이 없어 친해지기 쉽지 않았으나

내게는 비교적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털어 놓기도 하였다

주로 경자 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었다

두아들에게 헌신적인 경자 씨가 안타깝다며 고생 많이 했으니

이제라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경자 씨는 경자 씨대로 그런 남편이 불만이었다

고생하며 자란 자신을 돌아 보며

자식에게만큼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경자 씨였다

부부간의 트러블이 생기면 나를 사이에 두고 탁구공처럼 설왕설래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우리 남편의 사업이 기울면서 조금씩 소원해져 갔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던날, 자기집 이사처럼 진두지휘를 하던 경자씨는 집정리를 마치고

"선우야, 너는 어려운일 없이 살줄 알았어, 네가 무척 부러웠는데" 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그녀는 내가 없을 때에도 우리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해놓고 가곤 했다

얼마간의 차비라도 쥐어 주려면 손사레를 치며

"그러면 내가 파출부가 되는거 같아

네가 나한테 따뜻하게 대해준걸 생각하면 너무 고마워

태어나서 인간대접 제대로 받아 본건 너한테 뿐이야"하곤 했었다

한동안 뜸하게 그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어려워진 내환경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될 즈음

뜻하지 않은 연락이 왔다

경자씨 아들 영재였다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위암 3기에 발견되어 손 쓸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아줌마한테 알리지 말래서 연락 할 수 없었어요

갑자기 닥친일이기도 했고 . .'


힘이 많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떡집이 잘되어 빚도 값고 집도 샀다며 조심스레 즐거워 하던 경자씨가 생각났다

작은 집으로 이사한 내가 내가 행여 서운할까봐 마음놓고 기뻐하지도 못했다

"잘 됐다, 큰일 했으니 이제부턴 가족 보다 자신을 위해서 살아

먹고 싶은거 먹고 입고 싶은거 입고 아이들만 챙기지 말고

날씨 좋아지면 부부동반 여행이라도 가자 "

"그래, 열일 제치고 준비할게 꼭 가자"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하던 그녀 였다


그녀가 나한테 가진 관심의 반만큼이라도 신경썼으면

그녀가 떠나기전 가까운 곳 여행은 할 수 있었을것 같다


내 생애 가장 아픈 이별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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