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97

옥임 씨 5

by 우선열

경자 씨를 아줌마로 부르는 옥임 씨의 호칭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나도 얼마쯤 그녀들의 갈등을 눈치채고는 있었다.

다만 경자 씨가 쌍방울 부모님을 대할 때의 살가운 태도와

경자 씨의 투덜거림에 전혀 개의치 않는 옥임 씨의 당당한 모습에 쉽사리 내색은 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 옥임 씨 특유의 말버릇 아니야? 좀 건방져 보이기는 하지만 지어먹은 마음은 없는 편 아닌가?"

경자 씨의 마음을 달래 볼 요량이었지만 내가 듣기에도 설득력은 없어 보였다

"싹수없는 거지, 네가 그렇게 느끼면 정도를 넘은 거 아냐?"

경자 씨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도 하고 눈에는 분노까지 서려 있었다


"슈퍼 들어오고서는 상가가 많이 활발해진 거 같네, 문방구 매상은 좀 오르는 거 같아?"

말머리를 돌릴 심사였는데 경자 씨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겉은 번드르르하지, 슈퍼가 만물상이잖아, 상가 내에 동일 품목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는데

정육점 베이커리 그릇 문방구코너까지 있어, 처음엔 속옷코너가 있었는데 쌍방울집에서 틀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드나드는 사람은 한정이 되어 있는데 나눠먹기 경쟁이야, 내 단골손님들도 슈퍼 같다가 아이들 준비물까지 사가지고 가더라니까 '

"그렇겠네 대형 마트 매장에는 온갖 생필품이 다 있는 법이니까 "

"정육점 아줌마는 슈퍼 사장하고 며칠 싸우더니 슈퍼엔 냉동 고기만 팔기로 합의했다나 봐,

그 집 아저씨 좀 무서운 데가 있잖아, 나같이 힘없고 약한 사람만 당하는 거지

더 미운건 옥임 씨야, 매일 슈퍼 사장단과 어울려 다닌다니까,

부자 언니들 앞세워서 속옷매장 빼고 문방용품코너를 만들게 했다는 거야, 봐라 꼬리치고 다니는 거,

우리끼리는 술 한잔도 못한다고 내숭 떨더니 허구한 날 술자리라니까 "

호사다마라더니 좋은 일에는 감당해야 할 다른 부분도 있기 마련인가 보다

상가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생기가 돌아도 내부적으로는 나눠먹기의 경쟁을 치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인구가 한정된 소도시에서는 당연한 귀결인 것도 같았다.

시무룩한 경자 씨를 위로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가게 내놓을까 봐 "

경자 씨가 마른 수건으로 진열장을 닦으며 힘겹게 말했다

구석구석 반질반질하게 윤이나는 문방구에 쏟은 경자 씨의 정성을 아는 내게는 청천벽력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경자 씨 이 가게 좋아하잖아, 경자 씨 덕에 상가 전체가 반짝이는데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처음 가져 본 내 가게거든, 남편이 사우디 가서 힘들게 벌어 온 돈으로 분양받은 거야,

다른 여자들은 춤바람이 나거나 재산을 탕진하곤 한다는데 나는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알뜰하게 살았지

남편 사우디 가 있는 동안에도 아이 둘 키우면서 파출부, 청소 안 해본 일이 없어

옥임이 둘째 언니 집에도 일 갔었던 적이 있거든, 그 언니가 나를 알아 본거야.

그 이후로 나를 파출부 대하듯 하네, 슈퍼가 들어오고부터는 더 심해진 것 같아"

하고는 잠시 침묵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물기가 스며드는 것이 싫었나 보다

"남편도 나도 고아로 자랐거든 부모님 정이 그리웠어, 쌍방울집 부모님이 정말 좋았는데,

나는 파출부하며 열심히 산거 부끄럽지 않은데 사람들이 나를 자기네 파출부 대하듯 해,

허드렛일이 생기면 나를 시킨다니까, 시키기 전에 내가 나서서 하긴 하지만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태도가 싫어, 남편이 사우디에서 돌아오면 관광버스를 하고 싶대, 차를 사야 하니 가게를 팔아야 하겠지, 너는 정말 내게 잘해줬는데 ,,, 정성 들인 가게를 떠나는 것도 싫고 너와 헤어지기도 싫지만..."

진열장 유리를 뽀드득 소리가 나게 닦는 경자 씨의 눈이 촉촉이 젖어 왔다

"문방구를 경자 씨만큼 잘할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 아저씨는 관광버스하고 경자 씨는 그대로 문방구 할 수는 없어?"

"아파트 살 때 무리를 해서 대출받았거든, 아파트나 가게 중 하나는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아이들한테 집 없는 설움 더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무슨 일을 해도 문방구 할 때만큼 돈 벌 자신 있어

우리 아이들만큼은 기죽지 않게 번듯하게 키우고 싶어 "
구석구석 문방구를 정리하는 경자 씨의 손길이 더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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