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임 씨 6
"아줌마, 막걸리 한잔 하라니까, 조금 마시면 기분 좋아지잖아"
술자리를 끝낸 옥임 씨가 불그스레 물든 얼굴에 흰 이를 드러내며 명랑하게 말했다
"그래, 옥임 씨 기분 좋아 보인다"
여태껏 불만을 토로하던 모습과는 달리 경자 씨도 가볍게 응대를 했다
불편한 관계를 염려했던 나도 한시름 놓이는 것 같았다
잠시 경자 씨가 한눈을 파는 사이 옥임 씨에게 경자 씨 기분이 나쁜 것 같다고 살짝 이야기를 했건만
"그러다 말겠지, 문방구 팔아야 한대, 속상한 거 어떡하겠어, 본인이 싫으면 아저씨를 설득해야지
관광버스 하다가 손해 보는 사람 많이 봤어, 그냥 문방구 하라니까,
아저씨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경자 씨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머쓱해져서 공연히 경자 씨 눈치가 보였다
"그래, 너는 간단해서 좋더라, 내 생각만 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돼,
나보다 다른 사람 생각 먼저 하게 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가 걱정돼'
"뭘 어떻게 생각해 문방구 아줌마지, 사장님이잖아, 이 나이에 아버지 가게 종업원인 나도 있다 "
"부모님 살아 계시잖아, 잘해드려, 돌아가시면 잘하고 싶어도 못해 "
"돌아가셨으면 마음껏 그리워할 수도 있지,
살아 계시는데 부모님에게 애물단지인 사람 속 사정을 알기나 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옥임 씨가 말을 이어 갔다
"깔끔하고 부지런하고 상냥하고 아줌마는 사람들이 다 좋아하더라,
나는 가만히 있어도 도도하다느니 건방지다느니 말이 많아,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할 일하면 되는 거지. 참, 슈퍼 문방용품은 대량 판매만 하기로 했어
학습 준비물 같은 건 취급 안 할 거야
슈퍼 들어왔는데 좋은 점이 있어야지 나눠먹기 경쟁만 할 수는 없잖아?"
"그래? 큰 슈퍼에서 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빨아들이나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소문은 속옷 용품 자리에 문방용품 넣으라고 네가 권했다던데?"
"슈퍼에서 속옷이 얼마나 팔리겠니? 우리 가게 봐라 아버지만 나와 계셔도 여자 손님들이 그냥 지나간다니까
원단부터 사이즈나 디자인 색깔까지, 예민한 게 속옷이야 큰 슈퍼에서 그런 거 생각 안 하겠어?
슈퍼엔 우리 모두가 고객인데, 상가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고객이잖아 "
"넌 부자 언니들 덕도 보잖아, 슈퍼 싹쓸이해 간다는 소문도 있던데 "
"언니네가 대가족이잖아 시부모님, 시누이. 시동생들까지 대가족 살림하느라 언니가 힘들지 뭐,
부잣집 맏며느리 아무나 하는 건 아니더라 "
"너, 부자 좋아하잖아, 슈퍼 사장단 하고만 어울리느라 우리는 본 척도 안 하던데 "
"그래, 아줌마까지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사람은 얼마나 입방아들을 찧겠니?
그러거나 말거나, 슈퍼가 빨리 자리 잡아야 상가가 번성하지, 이런저런 상가 이야기해 주는 중이야
슈퍼에서 내는 광고에 상가 코너도 만들어주기로 했어, 공짜야.
부잣집 옆에 있으면 콩고물이라도 먹을 수 있어야지, 신세한탄만 하면 도움이 되겠어?"
"문방구도 선전해 준대? 기왕이면 잘해야 될 텐데, 사진을 찍어야 하나?"
경자 씨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 사람들도 장산데 뭐, 자기들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안 할 거야 큰 기대는 하지 마,
그래도 안 하는 거보다는 낫겠지?"
"그렇겠지, 셋째 애썼네, 겉멋만 들어서 슈퍼 사장단하고 만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큰일 했어 "
경자 씨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니까 아줌마도 끙끙 거리지만 말고 속 이야기 시원하게 해 버려
아저씨한테 문방구 절대 못 판다고 해,
아저씨가 사우디에서 고생하는 동안 아줌마도 열심히 일했잖아
애들 둘 데리고 여자가 일하는 게 쉬운 일이야? 그만큼 했으면 큰소리쳐도 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하면서 눈물 찔찔 짜던 거 우리 다 알아
그리고 솔직히 이 상가에 아줌마 없으면 어떡하니? 크고 작은 일 앞장서서 다 하잖아
문방구에서 돈 벌어서 관광버스 사준다고 큰소리쳐"
"알기는 아네 "
경자 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참 많이도 불렀는데 막상 온다니까 좀 서먹하기도 해,
그동안의 일상이 많이 변하겠지,
그렇게 똑똑한 너는 왜 결혼 안 하니? 언니더러 부잣집 남자 소개하라 해.
너랑 결혼하는 남자는 행운이지 "
한껏 고무된 경자 씨 목소리였다
옥임 씨는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몇 마디 말에 경자 씨의 묶은 오해들이 풀어지는 듯했다
"언니들이 옥임 씨 걱정하더라,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는데
집안 살림을 떠맡아 결혼이 늦어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형부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는 건 아닌가 싶대
노파심이겠지만 슈퍼 사장단하고 어울리는 것도 좀 걱정이 되나 봐
쓸데없는 루머에 휩쓸릴 수도 있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