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피자? 그때그때 다르다

by 우선열




자장면과 짬뽕에는 ‘반반’이 있다. 그러나 치킨과 피자에는 반반이 없다.
치킨과 피자는 반반이 아니라 서로에게 스며들어, 피자 맛 치킨이 되거나 치킨이 토핑된 피자가 되어버린다.
치킨이냐 피자냐를 고민할 것 없이 피자 맛 치킨이나 치킨 얹은 피자를 시키면 된다.

하지만 먹어보면 안다.
자장면과 짬뽕의 반반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맛은 두 가지가 함께 있어도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자장면 한 그릇을 온전히 먹은 후의 만족감과 반반 그릇을 비운 후의 허기는 다르다.
배는 부른데, 어딘가 아쉽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아서.

차라리 자장면을 시키고, 옆 사람 짬뽕을 한 젓가락 얻어먹는 게 낫다.
포만감도 챙기고, 호기심도 만족시키는 최선의 조합이다.

치킨 맛 피자나 치킨 얹은 피자는 반반보다는 나은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 또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된다.
빨강과 파랑이 섞여 보라색이 되듯, 치킨과 피자가 만나면 전혀 새로운 제3의 맛이 된다.
결국 우리는 다시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치킨이냐, 피자냐?

치킨에도 갈래가 있다. 양념이냐, 프라이드냐.
프라이드만, 혹은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이 조합은 그나마 만족스럽다.
근본은 같다. 양념만 다르다.
양념을 걷어내면 본래의 닭고기가 남는다.

짬짜면은 다르다.
자장면인 듯하다가도 슬그머니 짬뽕이 되어버린다.
치킨처럼 발끝만 담그고 빠지는 얕은 수가 아니라,
양쪽에 한 발씩 걸치고 어느 쪽도 아닌 척하는, 애매한 정체성이다.
네 편인지 내 편인지조차 분간이 안 된다.

얽히고설킨 인간사 같다.
우리는 '우리 편'이 되지 못하고,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뉜다.
내 편 같은 네 편도 있고, 네 편 같은 내 편도 있다.
‘우리 편’은 그 사이를 오가며 깍두기 신세가 된다.

유능한 깍두기는 양쪽에서 환영받지만, 무능한 깍두기는 양쪽에서 배척받는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은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사교 능력이 뛰어난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
각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역사 속에서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인물이 있다.
삼국시대 촉한의 유비.
그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고,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조차 등용해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그는 ‘위촉오’ 삼국의 질서 속에서 촉나라를 세우고 통일을 꿈꿨다.

자장면도, 짬뽕도, 치킨도, 피자도 각각의 맛이 있다.
한 가지가 항상 최선은 아니다.
네 가지 맛을 두루 맛보아야, 새로운 조합도 만들어낼 수 있다.

피자 맛 치킨도 좋고, 치킨 얹은 피자도 괜찮다.
빨강과 파랑이 만나 보라색이 되듯,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치킨이냐, 피자냐?
그건 그때그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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