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90

54년 경자씨

by 우선열

우리는 그녀를 문방구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때 나는 서울 전출을 위해 지방 학교를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당분간의 생활비를 마련하려

서울 변두리 작은 상가 건물 일부를 분양받았다.

그 상가에서 우리는 만났다

35세 노처녀인 나, 34세 두 아이 엄마 경자 씨, 33세 노처녀 쌍방울 메리야스 집 셋째 딸

그만그만한 나이의 우리들은 상가 삼총사를 자처하며각별한 우의를 다졌다

또래의 분양주들이 더 있긴 했지만 가정주부들이라 집안 살림에 매이는 시간이 많아

상가 일은 대부분 남자들이 맡는 편이었다

경자 씨는 남편이 해외파견 근무 중이니 모든 대소사를 혼자 결정하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듯한 까만 눈은 초롱초롱 빛나 영리하고 바지런했다

세성 물정 어두웠던 내가 이 상가를 분양 받은 것은 상가가 비교적 한가해서였으니

상가 전면을 차지하고 있던 문방구와 메리야스 집 뒷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상가의 주도권은 전면에 있는 두 상가 차지였다


씨암탉처럼 작고 야무진 문방구 아줌마는 상가건물을 드나들며

쓸고 닦고 제 집처럼 정성을 다해 주인다운 면모를 과시했고

메리야스 집은 은퇴한 딸부잣집 노부부가 노후 생활자금으로 운영하려 했으나

젊은이들의 속옷을 취급하기가 민망하다 하여 딸들이 운영을 맡아하고 있었다

말발 세고 기 센 딸부자 집 딸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면 상가 안이 떠들썩해졌었다


새로 오픈한 동네 어귀 새 상가는

딸부잣집 셋째 딸과 문방구 아줌마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내 점포의 세입자를 찾기 위해, 빈 점포 관리를 위해, 백수였던 나의 상가 출입도 잦았다

문방구 아줌마는 두 아들의 공부를 내게 부탁하여 가족 간의 교류도 이루어질 정도의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딸부잣집 딸들의 재치 있는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했다

문방구 아줌마의 밝은 얼굴에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 한 것은

비어 있던 지하 점포에 대형 슈퍼가 입점할 무렵이다

슈퍼는 주식회사 규모로 제법 컸고 이무렵 상가 전면에 커다란 플래카드와 배너 광고 광고,풍선장식 등 광고에 열을 올려 상가 근처는 축제를 만난듯 흥겨운 분위기였다.

쥐 방구리 드나들듯 슈퍼를 오가며 신이 나 있던 문방구 아줌마가 풀이 죽어 새침한 모습이었다

" 왜 저래? 무슨 일 있었어?"

공연히 눈치가 보여 나는 메리야스 집에 먼저 들려 셋째와 이야기를 나눴다

"글쎄 별일 없었는데. . 내가 불러 볼게 아줌마 뭐 하니? 선우 왔는데, 밖에 박스도 많던데

박스 총각 오기 전에 좀 치워 놓아야 하지 않나?"

셋째는 마치 아랫사람에게 말하듯 문방구를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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