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정돈

by 우선열

정리 정돈을 하지 못한다.

쓰고 있는 물건은 눈앞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서랍이나 수납공간에 넣어 버리면 쓸 때마다 꺼내야 하는 불편이 싫다

우리 집은 늘 이사 갈 집처럼 어수선하다.

꾸미기는커녕 정리 정돈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시거든 떨지나 말 일인데 어질러진 물건과는 상관없이 잘 꾸며진 집을 보면 부럽기는 하다

잘 정리된 책상과 조명이 아우러진 공간을 좋아한다.

그런 집들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저렇게 정리할 거야, 지금은 사용하는 중이니 어질러진 게 당연해, 물건들은 사용하는 것이지 수납하려고 마련해 놓은 건 아니야 화보에 나온 집도 평시엔 어질러져 있을 거야, 사진 찍기 위해서 연출했겠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화보에서 본 조명등을 사들이고 자질구레한 문방용품과 책 사기를 멈추지 않는다.

책은 언젠가 읽을 예정이고 필기구는 자리를 차지하니 않을뿐더러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얼마쯤 책상 위에 나뒹굴어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다.

아무렇게나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들을 책장으로 옮겨 놓으면 눈에서 멀어져 읽지 않을 것만 같다

눈에 보여야 틈틈이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미처 읽지 못하는 책들은 쌓여만 간다

읽고 있던 책이나 읽고 싶은 책을 찾으려면 책 더미를 뒤져야 한다.

금방 찾는 날은 별문제가 없지만 물건이란 게 꼭 제자리에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가끔 물건 요정이 장난을 친다

방금 전에 책상 위에 있던 책이 간 곳이 없어져 찾다 보면 엉뚱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수없이 굴러다니던 볼펜 뭉치도 찾으면 없다


" 대통령의 글쓰기' 책 내게 있어요, 독학할 때 읽은 책이거든요, 빌려 드릴게요" 말을 하다가 아차 싶었다

책장 정리를 한다고 책을 온통 흐트러 놓은 게 생각났다

보이는 대로 가방에 넣거나 책 뭉치로 쌓아 놓고 벌써 몇 달째, 책상 위는 새로 사들인 책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다

그 책을 찾으려면 당장 책 정리를 해야 만하건만 "책장을 사용하기 좋게 짜 맞춰, 책 정리하기도 좋을 거야" 하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쓰던 책장을 치워버렸다

책 더미가 쌓여 있는 건 내가 게으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벌써 몇 달째 치일 피일 책장 맞추기를 미루고 있는 건 게으름이 분명하다

분명하지 않은 변명은 있다

기왕 장만하는 새 책장이라면 근사한걸 마련하고 싶다

새 책장 주 변에 놓아야 할 조명등도 미리 구입해 놓았다

세워놓아야 할 키 큰 조명등, 책상 위에 놓을 LED 조명등, 언젠가 사놓고 베란다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분위기 있는 고재 조명등 ,샹들리에 형의 반짝반짝 늘어지는 조명등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계란 머리에 인 계란 장수 처녀처럼 생각들이 오간다

어질러진 책상이 불편하긴커녕 흐뭇한 성정이니 빨리 정리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비상사태만 아니면 말이다

이젠 발등에 불 떨어졌다

문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의 글쓰기 책을 찾가 위해 책장 정리를 해야만 한다

조명등은 있는데 책장이 없다

앙꼬 없는 찐빵이다

누가 나 좀 살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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