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사유'
‘근묵자흑’이라더니 독립서점을 즐겨 찾는 문우 덕분에 알게 된 서점이다.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주로 대형서점을 이용하는 편이다.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접근성도 좋고, 무엇보다 책이 많다.
독립서점 특유의 분위기와 전문성도 좋지만, 어쩐지 눈치가 보여
꼭 사고 싶은 책이 있을 때에만 찾아가게 된다
대형서점에서는 이런저런 책을 집어 들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지만,
독립서점에선 ‘책을 사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아마도 소극적인 내 성격 탓도 있겠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대형서점이 편하고,
대표 한두 명이 지키는 독립서점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은 있다.
문우를 졸랐더니 함께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친구 따라 강북까지 나선 길.
"나는 서울 살지만 이 동네는 생전 처음이에요."
문우가 웃으며 말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지만, 마음 먹고 나서야 닿을 수 있는 거리다.
KTX로 평택까지 왕복할 시간과 맞먹었다.
똑똑하고 친절한 내비게이션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도착지에 이르렀다는데, 서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되돌아서려는 찰나,
"여기네!"
문우가 소리쳤다.
입간판 하나 없는 작은 서점.
창문 한쪽에 손바닥만 한 글씨로 적힌 ‘사유의 사유’,
그 옆으로 포스터 두 장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초행길에 그냥 지나쳤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문우의 눈썰미 덕에 무사히 '사유의 사유'에 도착했다.
서점 안은 마치 누군가의 거실 같았다.
책을 좋아하는 이가 조용히 운영하는 작은 카페 같은 분위기.
낯을 가리는 편인데도 오랜 친구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나도 모르게 수다스러워졌다.
"밥은 먹고 사나요?"
문득 튀어나온 질문에 내가 먼저 놀랐다.
보통은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네, 먹고는 삽니다."
사장님이 편안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요즘 서점들 많이 어렵다던데요."
"네, 문화재 강의도 하고, 월간지에 기고도 하고, 대학 강의도 나갑니다."
"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몇 살로 보이세요?"
"한 스물다섯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어이쿠, 진짜요? 저 쉰 다 됐습니다."
"에이, 거짓말 아니에요?"
우리 모두 동시에 외쳤다.
믿기 어려운 젊음이었다.
책을 좋아하면 이렇게 젊게 사는 걸까.
가장 오래 사는 직업군이 ‘학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카페 같은 이 서점은 사장님을 꼭 닮았다.
아기자기하고 유머스럽지만, 책에는 전문성이 깃들어 있다.
서가에는 역사와 예술에 관한 책들이 가득했다.
특히 미술 서적이 눈에 띄었다.
미술에 관심 많은 문우는 겸재 정선 화집을 골랐다.
우리 모두 각자 한 권씩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
나는 사장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미술에 막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읽기 좋은 책이 있을까요?”
미술관 가는 건 좋아하지만,
‘좋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없는 내가 늘 아쉬웠다.
보고 느낀 걸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을 갖고 싶었다.
사장님이 권한 책은,
마침 내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바로 그 책,
아키타 마사코의 ,그림을 보는기술이었다.
두말 않고 집어 들었다
함께 간 친구들은 어떤 책을 골랐을까?
궁금해하다가
‘책 돌려보기 해볼까?’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어쩐지 민망하다.
독립서점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책을 사는 데는 인색해진다.
솔직히, 책 보관할 공간도 부족하다.
욕심껏 사들인 읽지 않은 책들도 쌓여만 간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9월엔 ‘사유의 사유’에서 열리는 ‘나혜석 읽기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생각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유를 넘어 행동하는 곳,
그곳이 바로 '사유의 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