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에는 뭉근하게 끓이는 삼계탕

by 우선열

초여름을 강타한 더위는 장마도 건너뛸 듯이 극성스러웠습니다. 여름이 한없이 길 게 이어질 것만 같더니 지각한 장마가 이제야 맹위를 떨칩니다, 조금 늦은 걸음를 만회하려는 듯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저기 장마가 할퀴고 간 흔적으로 일상이 몸살을 앓고 새벽 공기는 제법 선선합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아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며 여유를 부려 봅니다. 더위도 장마도 지나가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을을 맞을 수 있습니다. 삼복더위가 눈앞에 있건만 남은 더위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더위쯤 맞짱 떠볼만하다는 객기도 부려 봅니다. 장마의 상처도 흔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마침 내일이 초복, 초복엔 역시 삼계탕, 이열치열의 진수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더운 삼계탕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몸에 척척 달라붙던 습기도 저만치 달아나 버릴겁니다, 스치는 바깥바람에 잠시 누리는 시원함과는 다르지요 오장육부를 데워 만들어진 건강한 온도. 복날엔 역시 삼계탕이 좋습니다

닭고기는 서민에게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육고기입니다 기력이 쇠진해진 날, 부담 없이 끓이는 닭죽을 좋아합니다 깨끗이 손질한 닭에 마늘만 듬뿍 넣고 담백하게 끓여 낸 국물에 찹쌀이 부드럽게 퍼진 뭉근한 닭죽 한 사발이면 잃었던 입맛도 제자리를 찾는 듯합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닭고기는 동서양 없이 친근한 보양식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더운 삼복더위엔 그냥 닭죽 만으로는 서운합니다 죽은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소의 낙지처럼, 특별한 것을 찾아야지요. 닭죽에 인삼을 넣는 센스, 국물요리가 발달한 우리 민족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아우라입니다. 인삼 한 뿌리로 가족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센스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지요, 삼계탕 삼 한 뿌리는 더위도 나누어지려는 우리 민족의 은근하고 끈기 있는 정서 같습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속에서 배어 나오는 사랑, 삼계탕 속의 닭 다리는 아버지 그릇에서 자식에게로 다시 어미의 것으로 한바탕 도리질을 칠 수도 있습니다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은 포만감이 가족 모두에게 퍼지지요 .삼계탕에 담을 수 있는 가족 사랑입니다

'사랑해'를 말로 외치는 서양 사람들은 이혼을 밥 먹듯 해치운다지요, 시대가 변하여 이젠 우리에게도 이혼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불행한 결혼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말도 이해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돌부리에 채여도 물은 흐르는 법입니다. 잠시 위기를 맞았다 한들 은근과 끈기의 민족 정서가 사라지기야 하겠습니까 . 복날 삼계탕을 찾듯 제자리를 찾아올 날도 있겠습니다.

삼 한 뿌리로 온 가족의 사랑을 나누던 은근하고 끈끈한 사랑, "이는 사랑해' 말로 끝나는 서양식 사랑과는 다르지만 우리 민족은 적응 능력도 뛰어납니다. 단순히 순응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바꾸는 지혜입니다. '사랑해' 덕분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던 갑돌이 갑순이식 사랑이 아니라 표현해야 하는 사랑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도 거침없이 애정 표현을 하는 젊은이들이 아직은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아름답습니다. 은근 부럽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삼계탕에 우러나는 진국처럼 깊은 사랑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름엔 이열치열 삼계탕을 끓여요. 은근하고 뭉근하게 끓여야 합니다. 삼계탕은 맛은 재료가 서로 우러나야 제맛입니다. 삼복더위도 물리치는 사랑을 삼계탕 한 그릇에 담습니다. 우리네 사랑도 은근한 끈기로 이어져 뭉근한 삼계탕처럼 다음세대에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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