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일이

by 우선열

어떻게 그런 일이" 살다 보면 누구나 황당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게 된다. 지나가는 에피소드처럼 가벼운 일이라면 잊고 마는데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주 떠오르곤 한다.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나고 나면 그리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다지만 그 일은 내 삶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젊음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어찌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젊음의 패기는 넘쳐났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싸워야 했다. 평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는 나는 비교적 진로가 결정되어 있는 편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문제는 있었지만 교사라는 직업이라는데는 변함이 없었다.

사대를 졸업하며 교사자격증은 받았지만 곧바로 교사로 취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순위 고사를 치렀다.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필요한 교사 수를 확보하는 시험이었다. 지방대를 졸업한 나는 서울로의 진출을 꿈꾸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회자되던 시기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기업 총수의 말도 유행이었다. 좀 더 큰 물에서 내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내가 살던 청주와 서울 두 곳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지방에서는 무난히 합격권이었지만 서울은 달랐다. 서울에 있는 대학 수도 많았고 나처럼 지방에서 서울 진출을 희망하는 사람도 많아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는 교통 환경도 열악했고 숙박 시설도 여의치 않았다. 더구나 여자 혼자 숙박시설에 머무는 것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나는 언니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당시의 주거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언니는 단칸방에 직장동료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오래 머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언니 숙소에서 시험을 무사히 치렀지만 합격자 발표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요즘처럼 문자나 통신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때였다 .그때의 합격자 발표는 교육청 게시판에서만 가능했다. 그 기간 동안 서울에 머물기도 불편했고 합격자 발표를 보러 오기도 애매했다. 만약 떨어졌다면 헛수고였고 합격했다 하더라도 2차 면접시험을 치르러 날짜에 맞춰 다시 와야 했다.

마침 아버지 친구분이 교육청에 근무하고 계셨다. 흔쾌히 합격 여부를 알아보는 부탁을 들어 주셨다 .그 분께들은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아버지 친구분께 조금 민망했지만 지방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니 교사 발령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서류를 작성하러 학교에 간 날 서울대학에서 출강 오시는 교수님을 만났다 "축하한다, 지방 합격자는 너뿐이더라"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저요? 아니에요, 저 떨어졌어요" "그럴 리가 있니. 내가 직접 확인했는데, 지방에서는 너 하나 합격이었거든" 교수님 말씀에 부랴부랴 확인했지만 2차 시험 불응으로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아버지 친구분의 착각이었고 내 불찰이었다. 이의를 제기해 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언니가 더 미안해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에서 조퇴를 하더라도 직접 알아볼 걸 그랬다면 아쉬워했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싶었던 나도 안타깝기는 했다.

무사히 지방학교에 발령받고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때 서울로 발령받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라리 시험에 떨어졌더라면 서운한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고 위로하고 있다, '만일 서울에 무사히 발령받았더라면 복잡한 서울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겠다' 생각도 해본다. 시험에 떨어진 것보다는 실력을 인정받은 것도 나쁘지 않다고 위로도 해본다 그때 내가 합격자 발표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을까? 황당하기도 하다 .작은 실수가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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