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씌우기와 폴꾸

by 우선열


새 학기가 되어 교과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책에 표지를 씌우는 일이었다.

대부분 달력이었다.

지난해 달력을 모아 두었다가 새 학기가 되면 달력을 한 장씩 떼어 내어 뒷장의 흰 부분이 앞이 되도록 책 표지를 입혔다

달력 종이를 책 크기에 맞춰 자른 다음 가운데 책을 놓고 네 귀퉁이를 조금씩 접어 넣는 것이다

겹치는 모서리 부분을 삼각형으로 예쁘게 접거나 잘라내야 책표지가 두껍지 않게 모양이 잡혔다

새 학기가 되면 우리는 두레반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어머니가 책표지를 싸주시기를 기다렸다

표지를 입힌 후 어머니는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같은 교과서 명과 내 이름자를 책표지 앞면에 써주시곤 했다 차례대로 책표지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던 시간이 즐거웠던 기억이다

이름자를 써넣어 줄 때는 제법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 앞에 펼쳐질 새 학기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우리가 철이 들어 직접 책표지를 씌울 수 있게 될 때까지 일 년에 두 번 새 학기가 되면 하던 일이다.

그때 달력에는 예쁜 여배우 사진이나 풍경화, 명화 같은 그림이 있었고

달력마다 종이의 재질이 조금씩 달랐다

대부분 은행 달력의 재질이 좋았다

빤질빤질 윤이 나고 질긴 아트지였다

서로 좋은 종이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도 있었고 순서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설레던 마음은 새 책을 받는 기쁨만큼 컸다고 기억된다


세월이 지나 물자가 조금 풍부해진 시대에는 과목별 비닐 포장지가 문방구에 등장했다

나는 이미 학창 시절이 끝난 후였고 비닐 책표지를 보며 책표지를 만들던 시절의 향수에 젖곤 했다

비닐 책표지에 대한 부러움도 있었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

책표지를 싸던 추억이 새로워졌다

정성 들여 책표지를 만들어 주시며 어머니는 새 학기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 넣어 주시곤 했다

2학년이 되는 기쁨, 3학년이 되면 해야 할 일, 자세한 내용은 기억에 없지만 그런 말씀을 들으며 새로운 각오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어른이 되고 싶었고 빨리 크고 싶었던 시절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책표지를 싸는 일은 우리 시절에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꾸미기였다

부모님의 도움과 덕담을 들어가며 우리는 책표지 싸는 법을 배우면서 컸다

조금 큰 후에는 동생들의 책표지를 싸주기도 했고 두 살 터울인 언니가 내 책표지를 싸 주던 기억도 있다


책표지를 꾸미는 일은 이렇게 물자를 아끼는 마음, 책을 사랑하는 마음, 성장에 대한 부모님의 가르침, 형제간의 우정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니 더 간곡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새로운 물건들이 넘쳐 나는 시대이다

가전제품은 가장 늦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꾸미기도 옛날 책표지의 감성은 아니다


대량 생산 시대, 똑같은 물건에 나만의 개성을 담고 싶은 마음이 아닌가 한다

다꾸와 신꾸까지는 알겠다

꼰대 소리를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다꾸와 신꾸를 보며

'별 시답지 않은 일을 한다'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다꾸에 붙이는 스티커도 신발에 붙이는 액세서리도 대량생산되어 팔리는 물건들이었다

나만의 감성이라지만 선택하는 것뿐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폴꾸는 조금 어리둥절하다

무얼 꾸미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몇 군데 SNS를 돌아 보고 나서야 사진 모으기 정도라는 감을 잡았다

우리 시대에는 앨범을 꾸몄다

시기 별로 사진을 모아 놓는 사진 첩이었다

요즘에야 핸드폰 속에 모든 사진의 들어 있어 언제 어디서나 꺼내 볼 수 있으니

따로 사진첩이 필요 없겠건만 다시 사진을 모으는 폴꾸가 유행이다


폴꾸에는 간단하게 메모를 적는다고 한다

간단하게 날짜나 장소를 적는 경우도 있고 그날의 감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냥 겉만 꾸미기와는 다르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책 표지에 내 이름자를 써넣듯 나만의 것이 되어 가는 과정, 꾸미기의 진수가 아닌가 한다


아직도 책표지를 만들던 기억이 새로운 것처럼

젊은이들은 폴꾸를 하며 기록해 놓은 감성들도 두고두고 추억이 될수도 있겠다

오늘은 나도 다이소에 가서 폴꾸 제품을 구입해 보아야겠다

아이와 찍은사진을 폴구로 만들어 놓겠다

아이가 그 폴꾸를 볼 때마다 새 학기가 되어 책표지를 싸던 내 기억처럼

새로이 추억을 회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사진첩이 아니라 간단한 기록이 있는 폴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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