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소비를 줄이는 건 아니자만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것 외에는 별다른 지출이 없다. 생활의 변화도 없으려니와 웬만한 건 이미 갖춰져 있고 익숙한 것의 편안함이 좋아 굳이 새것을 들이지도 않는다. 병원 가는 것 외에는 특별히 지출할 일이 없는 게 요즘이다. 본의 아니게 축소지향의 생활을 하고 있다,
늘어나는 게 있다면 책 몇 권, 책읽기보다는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 이후로는 책 읽기가 만만치 않다. 앉은 자리에서 밤새워 책을 읽던 시절과는 다르다. '언젠가는 읽을 거야' 새 책을 살 때 하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책 욕심은 있었다. 첫 월급을 타자마자 세계문학 전집과 미술 전집, 백과사전들을 할부로 들여놓았던 기억이다. 호화 양장본 책들이 거실 장식장을 꾸미던 시절이다. 자취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이니 단칸방을 꾸미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었으니 뭐든 쌓아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일 년 먹을 양식을 비축하고 월동준비 연탄과 김장김치를 마련해 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그런 결핍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책장도 없이 엉성하게 쌓아 놓은 책들을 보며 흐뭇해하곤 했다. 아직 그 버릇이 남아 있나 보다 마음에 드는 책을 보면 망설일 여유 없이 사들이고 만다. 모르는 분야니까, 책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이 좋아서, 요즘 트렌드라서,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많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문예지와 문우들이 집필한 책들을 기증받는 즐거움이 있다.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읽을거리가 넘쳐나건만 서점엘 가면 한두 권 책을 사들고 만다. '이젠 서점 나들이가 아니라 도서관 나들이를 해야겠다'고 혼잣말을 한다. 책이 늘어나는 속도가 만만치 않다.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책은 쌓여만 간다.
제대로 읽지 않고 쌓아 놓기만 하는 것 같지만 심심한 날에 이것저것 뒤적이는 재미도 있다. 그럴 때면 한 장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반갑기 그지없다. 잊어버렸던 애장품을 찾은 기쁨이다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책 살 때마다 한 말의 근거가 된다
이번 여름에도 사들인 책과 월간지, 기증도서를 합치니 책장 한 칸이 꽉 찬다. '언제 다 읽을까' 하는 염려보다는 싸놓은 책을 보는 흐뭇한 마음이 크다. 마치 먹을 걸 잔뜩 눈앞에 두고 있는 어린아이 같다. 욕심껏 들여놓은 책이 좋기만 하다.
요즘은 오디오 북이나 전자책이 있어 종이 책보다 접근이 간편하니 읽는 책보다 듣는 책이 많은 현실이다. 듣다가 마음에 들면 사고 만다. 좋은 책은 한 번만 읽게 되지는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펼쳐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래저래 내 책장은 한동안 정리하기보다는 늘어날 것 같다. 책 대여섯 권 값이 질 좋은 옷이나 가방 가격보다 가벼우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사는 기쁨과 소장의 즐거움, 언젠가는 읽으리라는 기대도 있다. 이제는 비워야 할 때라지만 책은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불특정 다수 모든 이에게 양식이 될 수도 있다 축소지향의 생활 중에서도 소장의 즐거움과 가치를 누릴 수 있으니 이만하면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작은 사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