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쓰기 연습생

by 우선열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커 든 짐을 조차 지실까

학창 시절 공부한 시조이다

이 시조를 새삼스레 떠 올린 건 은퇴를 앞둔 65세 즈음이다.

아들이 경제적 독립을 하면서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의무와 책임이 먼저였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언제나 선택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일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쁨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무거운 편이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해야 할 일에 묶여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 개인의 삶이 아니라 사회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엄마, 아내, 딸, 직장인으로 의무와 책임에 묶여 있던 삶도 나쁘지는 않았다

나의 선택이었고 더 잘 해내고 싶었다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육아와 출산이었다

내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의 감격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함이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었다

현실은 그리 잘 해낸 것 같지는 않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그 시절을 사랑한다

힘들고 어려워도 힘을 낼 수 있었으며

블랙홀처럼 끝 간 데 없는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해내어야 했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일이 어찌 쉽기만 했으랴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것 같이 허무했으나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났으니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모든 걸 내려놓지 못하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마침 아이의 독립이 기폭제가 되어 준 것이다

보잘것없고 무겁기만 하던 짐을 벗게 해 주었다

홀가분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이 쉬운 건 아니었다

이제껏 해오던 내가 해야 하는 일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했다

비로소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밀쳐 놓았던 글쓰기를 볼 수 있었다

'글 잘 쓰는 아이'라는 어린 시절 평판이 떠 올랐다

쓰기 시작만 하면 잘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밀려왔지만 욕심일 뿐이었다.

한 줄 글도 쓸 수 없었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건 '글 잘 쓰는'아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었고 품었던 꿈을 놓는 일이었다.

그 순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철든 이후 나 자신을 위해서 울어 본 적이 있던가? 에 생각이 미쳤다.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음을 알았다

욕심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글쓰기 연습생이 되기로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려 한다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니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노후를 맞는다

나는 이제 글쓰기 연습생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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