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면 먼저 새벽의 검은 하늘이 다가온다. 건너편 아파트 불빛만이 고요를 깨우고 있다. 잠시 후면 하늘은 붉게 물들고, 동쪽 창가에 해가 떠오르며 세상은 조금씩 밝아질 것이다. 일출을 맞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여름날 창을 활짝 열어 두면, 운 좋은 날에는 누운 채 달을 만날 때도 있다. 눈썹 같은 초승달이 되었다가 반달로 차고, 이윽고 보름달로 환해진다.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홀로 보기에는 아까울 만큼 귀한 순간이다.
아파트 앞 놀이터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지닌다. 새싹 돋는 봄, 짙푸른 그늘이 드리운 여름, 단풍 고운 가을, 눈 내리는 겨울. 창을 열고 내려다보면 계절이 주는 환희에 잠시나마 잠길 수 있다. 여름내 무성했던 나무들은 이제 물들 준비를 하고 있다. 푸른 청춘이 저물고 황혼이 찾아오듯, 나무 또한 잎을 거듭 피우고 지며 매해 다른 시간을 살아낸다.
하늘의 달이 하루가 다르게 모양을 바꾸듯, 땅의 나무도 철마다 다른 빛깔을 지닌다. 초승에서 보름을 거쳐 그믐으로 이어지듯, 봄의 여린 잎은 여름의 녹음을 이루고, 가을의 단풍이 되어 겨울엔 눈꽃을 맞는다. 새벽의 붉은 여명, 낮의 눈부신 햇살, 저녁의 석양 또한 창마다 다른 풍경으로 스며든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내 모습도 다르지 않으리라. 같은 하루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새로워진다. 어둠이 지나야 빛을 만나고, 겨울을 견뎌야 봄을 맞듯, 삶의 풍경 또한 그러하다. 눈앞의 아름다움에 머물되 흔들리지는 않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곧 그칠 것을 믿으며 묵묵히 내 길을 걸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