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에는

by 우선열

좀체 끝날 것 같지 않던 기승스러운 여름 더위도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고

하늘 가득 가을이 스며들었습니다.

채 삭이지 못한 '여인의 한'처럼 남은, 불덩이 같은 한낮 더위도

소슬바람 한두 번이면 이내 잠잠해지고 말 것입니다

어련히 알아서 오는 계절이건만 조바심을 내던 가벼움이 민망해지면서도

이 좋은 계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욕심에 마음만 앞서갑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보리라 다짐했는데

"행글라이더 어때?' 하던 친구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흔들어 놓습니다

평소처럼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건만

푸른 창공을 나는 행글라이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어때? 어때? 어때? ······" 하는 친구의 말이 메아리쳐 들려옵니다.

행글라이더라니요? 젊은 시절에도 가까이하지 못했던 스포츠입니다

소심하고 안전주의인 성격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얼마든지 많은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스포츠를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평소의 소신입니다

늦게 자전거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을 했었지만 골절이 염려되어 포기해 버렸고

등산도 위험한 상황을 염려하여 혼자 가지 않는 안전제일주의자라 할 수 있는데

느닷없이 이 가을에 행글라이더가 마음을 쥐고 흔들어 버립니다.


지난해 가을 단양 하늘에서 본 행글라이더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개처럼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빛깔은 또 형형색색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저마다 다른 색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 난생처음 도전해 본 플라이 피시도 생각났습니다

달리는 보트에 매달려 잠시 하늘에 떠 있었거든요

짓궂은 친구의 강요로 하게 된 경험이었지만 꽤 괜찮았습니다

잔뜩 겁을 먹었건만 의외로 무섭지 않았고

잠시 하늘에 떠있던 그 기분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경이와 평화였거든요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습니다

행글라이더로 하늘에 오르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평소의 내가 말합니다

"그건 잠시잖아, 행글라이더는 꽤 오래 하늘에 떠있어야 해,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행글라이더의 유혹에 빠진 내가 대답합니다

"영미도 하잖아, 영미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영미는 오래전부터 해 왔잖아, 몸에 익었으니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거야"

"누구나 처음은 있어, 영미도 처음부터 잘하진 않았어"

"그건 젊었을 때지, 젊어서 배웠으니 지금도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처음이잖아, 몸도 늙었는데 위험한 스포츠를 새로 시작하는 건 무리야"

"젊을 때는 무엇이든 해 볼 기회가 많지만 우린 이제 시간이 없어

지금 못하면 영원히 못 해볼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나하고 싶은 것 해보겠다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니?

더구나 몸치 운동치인 내가 배우려면 여러 사람 힘들 거다. 그나마 할 수도 없을걸?"

내 안의 두 사람이 싸우고 있습니다


과연 이 가을에 나는 행글라이더를 타 볼 수 있을까요?

혹시 '65세 이상 금지' 이런 제한에 걸리지는 않을까요?

영미가 타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또 모르지요, 초보는 제한이 있을지도····


위험을 무릎 쓰고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하지만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내게는 차선이 있으니까요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거지요


어제는 광화문에 나갔었습니다

광화문 공장에 서울 야외 도서관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2024년 4월 18일부터 11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 행사는

서울 광장, 광화문 광장, 청계천 세 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금 토 일요일

서울 광장은 목 금 토 일요일

청계천은 금. 토 요일입니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변모하는 서울의 모습도 관찰하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 사 들었으니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아무튼 이 가을을 행복하게 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