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은 종종 무얼 먹느냐 보다 누구랑 먹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산해진미를 먹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고
시장 바닥에서 먹은 국수 한 가닥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것도 실상은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다.
어머니들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가 자식 입에 먹을 거 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모습이라 한다
어머니의 음식에는 그런 정성이 배어 있어 영혼의 음식이 된다.
좌포 우혜 홍동백서 같은 말은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던 격식이었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격식에 맞춰 음식을 장만하여 경건한 의례를 치렀다
그때마다 뵌 적 없는 조상들의 행적을 들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하루아침에는 아니었다
해마다 조금씩 의례가 간편해졌다
얼굴을 모르는 삼대 이상 조상들을 위한 제례가 제일 먼저 없어졌다
열 손가락이 모자라던 제사 숫자가 다섯 손가락 이내로 줄어들면서 제사 음식도 차츰 간소화 되었다
무엇보다 먹지 않으면서 갖춰야 했던 시대와 다른 음식들이 사라졌다
고인을 기억하는 제사이니 그들이 생전에 즐기던 음식을 장만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얼마간은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이래도 되나' 하는 자책이 들기도 했지만
허례허식과 불필요한 과도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이 크고
음식 낭비를 줄이는 일이기도 했다
명절날에는 차례 음식을 대신 차려주는 대행 회사가 생기기도 했다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차례 절차가 간단해질 수밖에는 없다
해외여행으로 명절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 여행지에서 간단하게 추모 의식을 갖기도 한다
4대 독자인 남편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쓸쓸해진 명절을 힘들어 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먼저 여행지를 검색하고 떠날 생각에 바빴다
그렇다고 사대 독자가 조상을 모시는 일에 소홀할 수는 없었다
여행지에서 간단하게 차례상을 장만하여 차례를 올리곤 했다
그때마다 "조상님 들도 집에만 계시면 답답할 거야, 이렇게 바람 쐬고 구경 다니는 걸 좋아할 수도 있어"
하곤 했다
늘 그런 무거운 책임을 안고 살았던 남편은 살아생전에 기독교로 개종을 면서 제사나 차례를 간소화했다
물론 일곱 시누들의 적극적인 찬성이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지금 나는 명절이나 제삿날 별다른 부담이 없다
형편 닿는 대로 가볍게 나름의 추모의식을 치르고 있다
오 남매인 친정의 제사는 조금 다르다
마음은 부모님을 기리는 같은 마음이지만 추모의식에는 조금씩 다른 견해가 있었다
이번이 아버님 삼년상, 이제는 어느 정도 서로 조율이 되어 각자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장만했다
장남이 중복되지 않도록 미리 정리해 주기는 했다
보령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동생이 근처에 사는 둘째에게
맛집 빵을 부탁했다
생전에 아버님은 단팥 빵을 좋아하셨다
기왕이면 아버지가 즐기던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둘째 동생은 음식 맛에 까다롭기는 하지만 웨이팅을 못 참는 성격이다
기다리는 지루함이 맛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한다는 견해이다
아버님 제삿날 음식이니 기다림이 대수는 아니었다 한다
동생은 아침 일찍 줄을 서 개인이 살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확보해 왔다
"이게 그렇게 맛있냐? 한 개만 맛보자"
문득 아버님이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들리는 듯 했다
아버님 생각으로 단팥빵을 한입 베어 물던 우리들은 다 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맛집이 아니었다
요즘 유행하는 앙버터 빵인데 빵도 부드럽고 팥이나 버터의 양이 적절했다
"맛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넉넉히 준비해 온 빵을 둘째 올케가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아버님 덕분에 우리들 모두 전국적으로 이름난 빵을 맛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셨을 것 같다
음식은 역시 누구랑 먹느냐이다
유난히 줄서기를 싫어하는 동생이 기꺼이 줄서기를 했으니 그 정성 또한 남다르다
어머님 정성 못지않은 가족애이다.
어머님이 안 계신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듯하다
오늘 먹은 앙버터 단팥빵은 단순한 음식이아니라
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이 녹아 있는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두고두고 우리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