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지 못하는 그리움

by 우선열


나는 미련이 많다. 그리움이야 보편적인 감정일 수 있지만, 나의 문제는 단순히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데 있지 않다. 나는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다.
시든 화분도 버리지 못하고, 이가 빠진 그릇도 찬장 구석에 몇 날 며칠 팽개쳐 둔다. 목 늘어진 티셔츠, 잉크가 떨어진 볼펜, 고장 난 다리미나 헤어드라이어처럼 수명을 다한 것들이 집안 구석구석 쌓여 있다. 화장품 용기들은 왜 그리 예쁜지, 다 쓴 통조차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면 들이는 것에 신중해야 하건만, 새것에 대한 호기심과 충동이 강하고 불편함을 잘 견디지도 못해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끊임없이 사들인다. 헌 드라이어를 버리기 전에 새것을 장만해 두는 식이다. 가위도 서너 개, 메모지나 빈 노트, 하다못해 수첩도 여러 개다. 여러 수첩에 메모한 것을 찾는 것보다 새로 메모하는 게 빠를 정도다.
볼펜처럼 작은 물건들은 책상 앞은 물론 화장대, 찬장, 심지어 냉장고 서랍에도 넣어둔다. 필요할 때 찾지 않고 그때그때 쓸 수 있다는 핑계지만, 막상 필기도구가 필요할 때는 까맣게 잊고 책상 위의 볼펜을 찾아 나선다. 수없이 늘어선 볼펜 중 서너 개는 속이 비어 있기 일쑤다. 볼펜 하나를 찾기 위해 책상 위를 뒤집어 놓아야 한다.
버리지 못한다는 건 정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칼날처럼 각 잡아 정리정돈해 놓은 화보 속 집들은 그저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소파 밑이나 장롱 뒤를 살펴보면 구겨 박아 놓은 옷가지나 소품들이 나올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드라마를 보면 안다. 갑자기 손님이 닥치면 급하게 침대 밑이나 소파 뒤로 잡다한 물건들을 숨겨 놓는다. 적당히 어질러진 모습이 오히려 진짜 생활 같다.
유럽 사람들이 정시에 퇴근하기 위해 일하던 물건들을 그대로 놓고 정리하지 않고 퇴근한다는 이야기는 내게 천군만마였다. 출근하면 제자리에 앉아 업무를 계속할 수 있다는 그들의 방식은, 정리하지 못하는 나의 습관에 그럴듯한 변명이 되어 주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퇴근 30분 전부터 필기도구를 수납하고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는 한국식 습관보다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다시 정리해 놓은 것을 꺼내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쓸데없는 소품도 이러하니, 소중히 가꿔야 하는 인연은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 시든 화분을 버리지 못해 새로운 화초를 심을 엄두를 못 내고, 반려동물로 발전한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무들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 들이지 못한다. 떠난 후에 남을 미련이 미리 두렵기 때문이다.
속세가 싫어 자연을 택한 사람들도 '자연인'이라며 매스컴을 타는 시대에,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인연을 맺지 않을 수는 없다. 하다못해 전철 옆자리 사람하고도 친근하게 말을 나누곤 하는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이다. 얽히고설킨 관계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리하거나 계산적이지 못하니 안부를 전하거나 표현하는 데 서투르다. 그저 '내 마음 같거니', '마음으로 통했으려니' 하고 만다. 결국, 미적지근한 나의 태도에 상대방은 떠나가 버리고 만다.
떠나가 버린 걸 알면서도 나는 떠나보내지 못한다. 늘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그리움이 사무쳐 망부석이 될 정도는 아니다. 그저 주변에 맴돌았듯, 그리움도 마음의 저변에 깔려 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어떤 순간이 되면 고래가 물을 뿜어 올리는 것처럼 느닷없고 제어 불가능하게 솟아오른다. 혼자 전전긍긍 그리움을 다스린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만,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느 때 다시 나타날지 나도 모른다.
생활 속의 그리움은 그렇게 잦아져 형체가 없는데, 블로그 속의 그리움은 기록으로 남는다. 블로그 운영 10년 차, 수많은 이웃을 만나고 헤어져야 했다. 만남이야 열린 공간이니 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지만, 떠나갈 때가 문제다. 이미 떠난 이웃들을 나는 보내지 못하고 있다.
블로그 이웃들은 여러 이유로 나를 떠난다. 블로그 운영을 멈추거나, 특별한 이유로 잠시 쉬거나, '블태기'라는 고약한 병을 앓기도 한다. 사소한 오해로 관계가 소홀해진 이웃도 있고, 10년 세월 동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미련한 나는 아무도 떠나보내지 못한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세상을 떠난 사람조차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다. 간혹 그들이 그리워질 때마다 그 블로그를 찾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랜다. 그러니, 어떠한 이유로든 소원해진 이웃들에게 나는 늘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언젠가 그들이 돌아왔을 때, 기다려 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련이 많아 정리되지 못한 어질러진 내 방이 내게는 편하듯, 떠나간 이웃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내 블로그도 내게는 사랑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기다리는 것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누구의 탓도 아닌, 내 미련한 성정 때문에 혼자 앓아야 하는 숙명이지만 그리움이 있어 삶이 이어지고 있다. 나를 살게하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