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과하지는 않았으나 끈질긴 빗줄기였다. 이틀 동안 비가 이어지니 구름 사이로 볼 수 있으려니 했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끝내 꿈속으로 멀어져 버렸다. 오늘 오후엔 비가 잠시 그칠 듯하다. 저녁 외출이 가능할까. 밝은 보름달은 아니더라도 달빛 고운 밤의 정취를 잠시나마 누려 보고 싶다. 성묘를 다녀왔건만 비를 피해 다녀야 했기에 마음이 탐탁지 않았다. 이틀 동안 방에 갇혀 지낸 듯 답답하다.
추석 전야에 보름달을 볼 수 없어 잠시 서운했지만 추석맞이 준비로 분주했으니 그럭저럭 잊을 수 있었다. 어제 오후부터 빗줄기가 제법 강해지자 마음이 흔들렸다. 평소 같으면 가을비의 우수(憂愁)에 젖어들었으련만 지금은 추석명절, 보름달을 향한 미련이 남았다. 성묘마저도 비를 피해야 했던 기억이니 씁쓸했다.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있었나' 자책하며, 구름 속에도 달은 떠 있노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비로 인한 피해 의식일까. 보름달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달빛 고운 밤의 정취는 남다르다. 은은하고 고요하게 마음을 적시고 깊이 스며든다. 한국인의 끈기 있는 정서와도 닮았다. 추억처럼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다. 섬광처럼 빠르게 다가와 온통 황홀하게 주변을 사로잡다가 금세 스쳐 지나가는 네온 불빛과는 그 결이 다르다.
요즘은 인공 불빛 시대이다. 여기저기 '빛의 축제'라며 현란한 불빛이 요란하고 일상에서도 불야성을 이루는 야경을 흔하게 본다. 잠시 잠깐 한눈을 팔지 않을 수는 없다. 오색찬란한 불빛의 유혹에 잠시 흔들린다. 흔들린다는 것은 곧추설 수 있다는 전제다. 유혹에 빠져들다가도 이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달빛은 스쳐 지나가는 유혹이 아니다. 마음을 적시고 가슴속 깊이 스며든다. 달빛 속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달빛이 담긴다.
금년엔 비록 보름달을 볼 수 없지만 구름 속에도 달은 떠 있음을 믿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유혹으로 남는 인공 불빛보다는 마음으로 스며드는 달빛 같은 인연이고 싶다. 비가 와도 구름 속에서도 달은 뜬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