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꽃의 계절

-오상고절 은 너 뿐인가 하노라 -

by 우선열



아름다운 국화의 계절이다. 형형색색 눈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은은한 향기로 온 가을을 물들인다. 마치 원숙한 여인의 기품 있는 모습 같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라고 노래한 시인의 찬사를 보면, 국화의 이미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품위에 있지 않은가 싶다.
첫눈에 반하는 요염한 장미의 매혹, 한 줄기 바람에도 온몸이 흔들리는 가냘픈 코스모스의 애잔함, 화려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이라는 상사화(相思花), 백날 동안 세 번을 피고 지며 한결같은 진홍의 진수를 유지하는 배롱나무꽃, 어느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화꽃을 볼 때면 유독 마음이 편안해진다. 찬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국화처럼, 일상의 번거로움쯤은 넉넉히 버텨낼 수 있을 듯하고, 다가올 혹독한 겨울 채비도 담담하게 감당할 용기를 얻는다.

30대 중반, 여고동창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생의 한가운데라는 치열한 과정에서 홍역을 앓던 시기였다. 친구들은 육아와 시집살이에 지쳐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시’ 자는 시금치도 싫다!" 성격이 원만해 시집살이는 자신 있다던 친구의 격한 일갈이었다.
"너 시집가지 마라. 능력 있는데 결혼은 왜 하니? 온종일 집안일에 시달리고 애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남편이 웬수 같지. 그런데 넌 왜 결혼 안 하니? 눈높이 좀 낮춰.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갑자기 말이 엇갈린다. "금방 결혼하지 말라며? 키가 160도 안되는데 눈이 높아야 얼마나 높겠니? 시집살이는 자신 있다더니 시금치도 싫다고? 무서워서 결혼 못 하겠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니? 힘든 거지. 너 혼자 있는 거 안타까워. 나이 들면 결혼 더 어려워진다. 남자들이 어린 여자만 찾거든, 애 낳기도 힘들고. 수학 선생님이 너 시집 잘 갈 거라 했었는데…" 왔다 갔다 하는 친구들의 말이 반갑지 않았다. 학창 시절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나를 비하하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결혼 생활의 고충을 불평하면서도, 은근히 남편과 자식 자랑에 열을 올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이 때문에 온갖 고단함을 잊을 수 있다며, 남편과 자식이 없는 나를 마치 장애인이라도 되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다. 집 장만이나 살림살이 노하우, 남편 다루는 법 등을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우등생이 열등생을 보살피는 듯한 묘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귀가하는 발걸음이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혼이 늦어진 것은 어쩌면 엄마의 교육 탓도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남자는 다 늑대라며 연애는 절대 하지 말라 하셨다. 다 큰 딸을 첫 부임지에 데려다주시며 "옛날에 엄마하고 결혼 못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매일 집 앞에 찾아오던 남자가 있었는데, 엄마가 냉정하게 거절하니 바로 다른 여자와 결혼하더라. 남자 말은 믿는 게 아니야"라며 다시 한번 '연애는 절대 금지'를 강조하셨다.
그런 엄마가 결혼이 늦어지니 이제 와서 "너는 왜 다른 사람 다 하는 연애도 못하니?" 하며 내 탓을 하신다. 하지만 엄마에게 똑같은 교육을 받고 자란 언니는 일찍 연애결혼을 했고, 세 동생들도 나름 자기 짝을 찾아가는 걸 보면 꼭 엄마 탓만은 아닌 듯도 하다. 이래저래 심란하던 차, "선우야, 우리 집이랑 방향이 같네, 같이 가자" 학창 시절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한 친구가 따라붙었다. 모임 내내 별말이 없었던 친구였다.
"나도 결혼이 늦었어. 이유 없이 늦더라. 동창생 모임에 나가면 벌써 학부형이 된 친구도 있는데, 나는 이제 겨우 젖먹이 벗어났잖니. 집들이하는 친구들 보면 부러워. 언제 내 집 마련하나 싶어. 우리는 연애결혼이지만 좀 특이한 케이스야. 같은 동네에서 친구처럼 지냈거든. 말하자면 소꿉친구야. 똑똑한 사람이라 오래 친하기는 했지만, 이 사람하고 인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시시콜콜 속엣말까지 주고받았고, 서로 이성 친구를 소개해 주기도 했지. 집안사람끼리도 서로 잘 아니까 형제 같았다고 할까?
막상 결혼하려니 집안사람들이 반대하더라. 이웃이었지만 두 집안의 성향이 달랐거든. 우리 엄마가 결사반대했어. 내가 고생할 거라고. 막상 결혼하고 나니 엄마의 반대가 이해되기도 해. 살아온 과정이 다른 두 사람의 차이를 극복하는 게 쉽지는 않아. 우리 남편은 성실하고 똑똑해. 일밖에 모르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시려. 그런데 친정은 좀 누리고 사는 편이거든, 생활에 찌든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나도 적응이 잘 안되는데 두 집안의 교두보 역할까지 해야 하니 힘들었어. 위로받을 때가 없었지. 어쩌다 친구들 모임에 가도 겉도는 듯한 자격지심만 드는 거야. 산후 우울증이 생기기도 했지.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 불평불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 내가 달라지기로 했어. 성실한 남편을 성실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안되는 거잖아? 현실을 인정하니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는 남편이 보이더라. 고맙잖아. 나와 내 아이를 위해서 이만큼 열심히 살아주는 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마음먹었지. 출근 때 진심으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귀가하면 반가운 마음을 여과 없이 표현했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기도 했지.
처음엔 좀 의아해하던 남편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연애 시절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때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되더라, 아주 작은 거부터 말이야. 하루는 남편에게서 꽃 선물을 받은 친구가 부럽지만, 꽃을 사기엔 돈이 너무 아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나 봐. 여자들이 그렇잖아. 결혼하면 꽃 대신 돈 주기를 원한다니까. 꽃을 받고 싶기는 하지만 곧 시들어 버리니 아깝잖아. 내 집 마련하려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니 말이야.
남편이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봐. 하루는 귀가하는데 현관문을 여니 손 뒤로 뭔가 감추고 있는 거야. 뭔데? 하고 물었더니 남편이 내민 것은 장례식장에서 쓰는 흰 국화꽃 꽃다발이었어. '웬 국화? 장례식장 가려고요?' 하려다 입을 꽉 깨물었지. 남편은 나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었던 거야. 비싸다고 투정 부릴까 봐 가장 싼 국화 한 뭉치를 사 들었을 거 같았어. 의기양양하게 말하더라니까, '이거 비싸지 않은 거야.' 나는 '어머, 예쁘다, 고마워요!'하고 활짝 웃었어. 무슨 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꽃을 선물하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받기로 한 거야. 지금은 그때 생각하며 남편과 같이 웃을 때도 많아. 내가 달라진 만큼 남편도 달라진 거지.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니까 모임에 나와도 위로받기보다는 속상할 때가 많지? 결국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거 같아. 너랑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너 글 잘 쓴다며?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네가 글 쓰는 걸 본 적은 없는 거 같아. 나는 글 잘 쓰는 사람이 제일 부럽더라. 사람마다 특성이 있는데 그걸 잘 모르기도 하지. 결혼이 네 마음대로 안 되면 직장일 말고 네가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 보면 어떠니?"

다시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국화를 보며 그 친구를 생각한다. 그날 친구에게서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원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당시 그 친구의 말에 용기를 많이 얻기는 했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기억해 준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자존감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지만,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당시만 해도 결혼을 못 한 노처녀는 무슨 신체상의 이상이 있거나 성격이 못된 고약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세파에 사정없이 시달리며 나는 결혼이 인생의 목표인 양 살아냈던 것 같다.
글쓰기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씨를 심어준 친구였다. 이제 칠십이 넘었으니 마음먹는다고 제대로 불씨를 살릴 수 있을까 염려스럽기는 하다.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국화에 대한 이 찬사는 어렵더라도 꿋꿋이 해나가보라는 국화를 닮은 친구의 충고처럼 들린다.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가을에 피어나는 국화꽃에 비할 수 있을까? 찬서리를 맞더라도 꿋꿋이 꽃 피워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