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퀘렌시아

by 우선열




스페인 투우장에서 지친 소가 마지막 힘을 모으기 위해 숨을 고르는 가장 안전한 장소, 그곳을 ‘퀘렌시아(Querencia)’라 부른다. 그곳에서 소는 순간적으로 재정비하고 다시 싸울 힘을 얻는다. 인간의 삶도 이 거대한 투우장과 다르지 않다. 해야 할 일의 무게, 사람들 사이의 소음, 멈추지 않는 시간의 압박 속에서 우리에게도 자신만의 퀘렌시아가 필요하다. 나를 온전히 회복시키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되찾는 순간, 바로 그곳이 우리의 퀘렌시아다.
아주 조그만 아이였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여름날 끝없이 펼쳐진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내 손목을 잡고 있었지만 엄마의 손은 아니었다. 몹시 덥고 지쳐 주저앉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스쳤다.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였다. 주변이 고요해지고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 속에 내가 들어선 것만 같았다. 아주 잠시였지만, ‘나는 혼자다’라는 자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는 다시 힘주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 더위에 어린것 데리고 오느라 고생하셨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걸요, 아이가 얼마나 음전한지 투정 한 번 안 하던걸요. 나무 그늘에서 좀 쉬어도 되건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암팡지게 걷던걸요".”어른들의 대화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그날 세상이 잠시 멈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나’로 홀로 설 수 있었다. 스스로 걸을 수 있었고 버텨낼 수 있었다. 아마 그때가 나의 첫 번째 퀘렌시아와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30대, 남들이 보기엔 모든 것이 순탄해 보이던 시절이었다. 나는 공허했고 정체성의 벽에 부딪혀 방황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우연히 한 장의 흑백사진을 보았다. <11월의 거리>였다. 잎을 다 떨군 가로수가 쓸쓸하게 서 있는 풍경이었다.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어 나올 듯한 <11월의 거리> 앞에서 나는 또다시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진 속의 나목처럼 나도 홀로 서야 했다. 홀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고 힘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두 번째 퀘렌시아는 아닐까?
인생이 더욱 고단해진 어느 날, 나는 허수아비처럼 힘없는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의미가 없어 보이는 날들이었다. 무심히 전철 계단을 오르던 내 앞에 분홍 미니스커트가 가볍게 나풀거렸다. 경쾌한 모습에 순간적으로 회색의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모르나 그 짧고 생생한 색감의 변화가 나를 다시 삶으로 불러낸 듯하다. 세상이 잠시 멈추었고 나는 그 선명함 속에 서 있었다.'살아야겠다' 삶이 의지가 불 타올랐다. 그것 또한 나의 퀘렌시아였다.
나의 퀘렌시아는 언제나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의 순간’에 찾아왔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새로운 힘을 얻었고, 스스로를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 그 정적, 그 몰입의 상태가 바로 나의 퀘렌시아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연히 찾아오는 순간 외에도, 내가 의식적으로 퀘렌시아를 만들 때가 있다. 힘겨웠던 육아의 시절을 견뎌낸 것도 모성이라는 무아의 경지 덕분이었다. 밤새 책을 읽을 때,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눌 때, 혹은 달리기에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경지에 오를 때, 그때 세상은 고요해지고 시간이 멈춘다. 육체가 기억하는 황홀한 정적이다. 그런 순간이면 나는 새롭게 태어 난다. 투우장의 소처럼 전투력을 회복하는 나 자신을 의식할 수 있다.
요즘은 글을 쓸 때 그런 순간을 맞는다. 도저히 써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순간 기적처럼 문장이 떠오를때 나는 나를 잊는다. 시간이 멈춘 듯한 몰입의 경지, 그 마법 같은 순간이 있기에 세상이 다시 견딜 만해지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곳이 바로 나의 퀘렌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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