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 가장 활력이 넘쳐 건강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친구에게서 뜻밖에 우울증 고백을 받았다.
작은 몸집이지만 씨암탉처럼 암팡진 몸매를 가진 그녀는 무슨 일이나 앞장서고 결단도 쉽고 행동도 빨라 친구들 간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70 대에 들어선 친구 중 유일하게 번지점프를 하고 행글라이더를 즐기며 자전거를 타고 윈드서핑을 한다. 고소 공포증이 있어 출렁다리에도 울렁증이 있고 자전거도 탈 줄 모르며 물속에서 가라앉아 수영도 못하는 내게 만능 스포츠맨인 그녀는 우상과도 같았다. 행글라이더로 하늘을 나는 멋진 모습에 감탄하고 시원한 윈드서핑을 즐기는 모습에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스포츠뿐 아니라 다른 취미도 다이내믹하여 정서적 취미로 그녀가 선택한 악기는 드럼이었다. 힘차게 팔을 들어 올려 드럼을 다루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사 같기도 했다. 운동으로 탄탄히 다져진 몸매와 명랑한 성품, 과감한 결단력, 바늘구멍도 허용하지 않을 거 같은 건실한 생활태도, 우리에게 그녀는 건강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파도 그녀에게만큼은 모든 질환이 비껴갈 거 같은 강인함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사고로 인한 골절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지나가던 자동차에 살짝 부딪쳤는데 팔을 다쳐 6개월 이상 깁스를 해야만 했다. 활동적인 그녀에게는 형벌과 같았다. 다친 팔에 적응해 가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팔깁스를 풀게 되었을 때 이번엔 다리를 다쳤다.
길을 바삐 걷다가 삐끗한 정도이니 심한 상처는 아닌 듯했는데 부위가 문제였다. 발목 예민한 부분이라 오래 치료를 요하는 부위였다. 다시 그녀는 다리에 깁스를 해야 했다. 팔과는 또 달랐다. 불편하더라도 팔은 마음대로 오갈 수는 있었는데 발깁스는 출입에 제한이 있었다. 목발을 짚고는 감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안에 칩거하며 운동은커녕 일상적인 생활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깁스를 한채 다시 6개월여의 시간이 흐르니 단단하던 그녀의 근육들도 풀어졌다. 눈으로 보아도 식별이 될 만큼 앙상해져 가는 모습에 그녀는 의기소침해졌다. 환절기엔 감기가 오기도 하고 독한 약을 먹어서인지 소화도 안되었다. 입맛이 없으니 식사시간이 제대로 일리가 없었다. 배고프면 조금, 허기가 지면 음식을 손에 잡히는대로 닥치는대로 먹어치웠다. 맛이나 영양을 따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지럽기도 하고 영양실조 같은 증상들이 왔다. 허겁지겁 병원을 찾았더니 역류성 식도염이라 했다.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조금씩 자주 먹으며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상에서 늘 조심할 수밖에는 없는 병이다.
"어쩔 수 없지 뭐, "
어쩌다 통화가 될 때마다 의연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현실을 현명하게 받아들이며 그녀답게 씩씩하게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오히려 내가 의기소침한 일이 생기면 그녀와의 통화로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우울증이 왔었어, 무조건 달리는 차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니까"
청천벽력 같은 고백을 했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내 무심함도 미웠고 의연한 채 버티고 있던 그녀도 안쓰러웠다. 진작에
"나 힘들어, 나 우울해, "
했더라면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마음이라도 좀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미리 말하지 않은 그녀가 야속했고친구의 상태를 알지 못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활기찬 그녀가 움직이지 못해 겪었을 고통을 좀 더 세심히 살폈어야 했다.
그녀는 항상 명랑했고 건강했다. 그런 선입견이 변한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 세상이 변하는데 그녀는 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다 같이 늙어 가는데 왜 건강한 그녀 모습만 떠 올렸을까?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에 맞추는 게 삶이다. 변하지 않는 건 세상에 없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항상 체크하고 확인해야 한다. 다시는 친구가 혼자 우울증을 겪게 두고 보아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