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by 우선열



"2026년 1월 31 토요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날짜를 먼저 읊는다. 행위는 매일 같지만 내용은 매번 다르다. 어제도 그제도 똑같이 하루를 맞이 하지만 2026년 1월 31일은 내 생애 처음 맞는 하루이다.

이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는 건 얼마 전부터이다. 새벽에 친구의 전화를 세 번 받은 날이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똑같은 질문이었다.

"야야, 우리 오늘 수업 있나?"

"응 오늘부터 수업이야, 이제 방학 끝났거든, 내가 문자로 남겨줄게"

문자로 남겨 놓고야 친구는 전화를 다시 하지 않았다.

새벽 고요를 흔든 전화벨 소리가 반갑지 않았지만 짜증스럽기보다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왜 이렀노? 금방 한일을 자꾸 잊어 뿐다"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글쓰기 반에 입문한 후 친해진 친구이다. 명랑하고 배려심 깊어 모두가 좋아하지만 나와 같은 날 글쓰기 반에 등록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절친이 되었다.

"니는 좋겠다, 글도 잘 쓰고 내는 그냥 선생님이 좋아서 글을 안 써도 공부한다 아이가"

이 말을 연거푸 할 때도 그냥 겸손한 자세인가 보다 생각했다.

"내가 이상한가? 친구들이 자꾸 치매검사해 보라 칸다. 자꾸 잊아뿌리긴 해도 실수는 안 한다 아이가"

친구의 말에 가볍게

"검사받아 보는 게 나쁠 건 없지, 65세 넘으니 여기저기서 치매 검사받으라 연락 오던데? 우리 나이엔 어느 정도 건망증이 있으니 미리 검사받아 보면 안심도 될거야 "

검사를 받고 난 후 친구는

'"괘않다 한다 경도인지 장애지 치매는 아니라 카던데" 라고 말했다


검사를 받은 후에도 친구의 증세는 하루가 달라졌다. 평소 같으면 새벽 전화는 물론 세 번씩 연거푸 전화를 하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야, 야 내 건망증이 자꾸 심해지는 것 같다 우야노, 뭔 일이 있으면 니가 좀 알려주라"

이말을 시작으로 밤낮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한번 시작하면 세 번은 똑같은 말을 하고 만다

'내 옆에 앉은 애 이름이 뭐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늘 만나는 친구의 이름을 묻곤 한다.


어제저녁 있었던 일이다.

"내 치맨가 보다. 아침에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까맣게 잊어 뿌릿다."

"건망증이야, 우리 나이엔 다 그래, 조금 심해질 때도 있고, 지나간 건 잊어버리지만 약속이나 중요한 일은 잊지 않잖아,"

"그래, 내가 신경 쓰는 일이 좀 많다. 집안 대소사가 다 내일 아이가. 그런 일 신경 쓰다 보니 자잘한 약속은 잊어 뿐다. "

"잊어버리지 않게 그때그때 메모해 둬, 우리 나이엔 조금씩 건망증이 있어, 나도 이번에 AI 수업을 깜빡하고 잊었다니까""

"니도 그렇나? 니는 똑똑한 줄알았데이, 나만 이런 줄 알고 죽어뿌릴까 생각했다"

장난기가 서린 말이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과 병원에도 몇 번 가서 검사와 진단을 받고 나름 치료를 받고 있건만 그녀의 증세는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 곁에서 약간의 위로를 해주는 것뿐이다. 우리 나이에 흔한 건망증이라는 말에 희미하게 번지는 미소로 조금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지만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말에 손주가 온다며 손주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는 그녀의 행복한 보습을 보면 치매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가격을 보고 고르는 물건을 고르는 솜씨도 여느 영악한 주부와 다름없다.


"근데 야야, 너도 불안하노, 집에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해,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오고 싶어"

양재천 산책길에 지나가듯 한 말이 걸려 머릿속에 맴돈다

"우리 이렇게 건강해서 양재천 산책할 수 있으니 됐어,예전같으면 고려장 치를 나이 아니니. 다른 걱정 말고 우리 남은 날 들 산책 즐기며 행복하게 살자, 같이 걸을 수 있는 친구도 있잖아, 걷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해, 참, 아침에 일어나서 날짜를 외우 듯 말하면 그날 있던 일을 기억하기 좋대, 오늘은 2026년 1월 30일이렇게 말이야 "

나는 오늘아침에 '2026년 1월 31일 토요일'을 소리내어 외쳤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오늘 생긴 일을 까맣게 잊고 과거에 사는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생애 처음 맞는 오늘이라는 하루. 그 평범한 일을 벗어나는 그때 까지 나는 오늘처럼 날짜를 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