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장수 집안이다. 어머니는 98세, 아버지는 96세까지 사시고 한두 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그런 건강한 유전자를 타고났으니 당연히 오래 살 것이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실제로 일흔이 넘도록 이렇다 할 성인병 없이 건강한 편이니, 이제까지는 제법 유전자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내 나이 또래엔 식사 때마다 한 움큼씩 약을 먹는 친구들이 많다. 그럴 때면 우리는 "약만 먹어도 배부르겠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나누곤 한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했던가. 농담처럼 던지는 그 말속에도 묵직한 고민이 담겨 있다. 한 움큼의 약 속에는 대개 영양제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영양제를 먹어야 하나, 먹는다면 얼마나 먹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다. 평소 "영양제보다는 잘 먹는 게 최고"라고 큰소리치지만, 나이 들면 소화 흡수력이 떨어지니 보충제가 필요하다는 말에 자꾸 귀가 솔깃해진다. 건강한 유전자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버틸 재간이 없다는 건 삶에서 터득한 지혜다. 다만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영양제가 그 손쉬운 답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질 뿐이다.
우리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강건하셨다. 잔병치레 한 번 없으셨고 무엇이든 잘 잡수셨다. 아무도 아버지의 건강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버지 스스로도 몸을 크게 돌보지 않으셨다. 93세에 처음 쓰러지셨을 때 병원에서는 그저 노환이라 진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뇌졸중 증세가 분명한데도 우리는 의사의 말만 믿었다. 평소 워낙 건강하셨기에 뇌졸중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결국 치료 시기를 놓친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3년을 보내셔야 했다. 콧줄에 의지해 식사하며 말씀도, 움직임도 없는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계셨다. 하필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3년을 외로이 사투하던 아버지는 면회가 허용되어 자식들의 얼굴을 모두 확인하신 뒤에야 비로소 숨을 거두셨다. 자식으로서 가장 가슴 아프고 회한이 남는 대목이다.
반면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병약하셨다. 그래서 유기농 식품과 건강식에 관심이 많으셨고 식사량도 철저히 관리하셨다. "단골 병원 선생님이 아들보다 낫다"고 하실 정도로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셨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는 더 건강해지셨다. 아침마다 맨손체조를 거르지 않으셨고, 하루 한 번은 꼭 바깥 산책을 즐기셨다. 그렇게 절제된 생활 패턴을 유지하시던 어머니는 98세에 노환으로 열흘 정도 집에 누워 계시다 평온하게 운명하셨다.
두 분의 삶을 보면 건강 유전자만큼이나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노후에 영양제에 다소 집착하신 면이 있었고, 어머니는 보조제보다는 평소의 소식과 규칙적인 식사를 중시하셨다. 만약 아버지가 건강을 과신하지 않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셨다면 어땠을까. 단골 병원이라도 정해두었다면 대형병원에서 짐짝 취급을 받으며 뇌졸중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뒤늦은 의문이 꼬리를 문다. 결국 유전자가 기본이라면, 관리는 그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플러스(+) 요인'인 셈이다.
백세 시대, 이제 장수 유전자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잘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부모님의 유전자에 의학의 발달까지 더해지면 나 역시 백세 이상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건강은 자신의 책임이다. 품위 있게 늙고 건강하게 머물다 가는 것, 그것이 백세 시대를 축복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임을 새삼 절감하며 사는 게 조금은 무겁고도 무섭게 다가온다. 삶이 마냥 무섭지만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