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일기장을 펼치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저녁시간 환하게 웃고 있던 그녀가 아무런 근심 걱정 없어 보였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어디 고? 무슨 일이 있었노?"
마침 연극 공연이 끝난 시간이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우리는 지체 없이 그녀를 만나러 갔다. 땅거미가 지면 집으로 향하는 주부의 귀소 본능도 우리를 막지 못했다.
"웬일이고? 네 명이 여기까지 나를 만나러 왔나? 어디서 만났는데? "
"뮤지컬 보고 오는 길이야"
세 번째 똑같은 물음에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
"그래, 참 연극 보았다고 했지. 듣고도 깜빡했다. 요즘 내가 그렇다. 건망증이 심해졌어"
"우리 다 같이 그렇지 뭐, 나도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 손에 휴대폰 들고 통화하면서 휴대폰을 찾고 있다니까, 앞으로 더 그렇겠지"
내가 말했다
"그래도 언니들은 십 년은 젊어 보여요, 산책할 때 내가 못 따라가겠더라니까, 몸도 가볍고 지치지도 않잖아요"
후배가 위로했다.
"걷는 건 자신 있다 아이가. 하루 만 보이상 늘 걷거든, 양재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야 알겠어"
아이처럼 들떠 한 옥타브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니 사람 사이의 정도 반드시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도 있으니 지나온 시간보다는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이 깊은 인연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났다.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정직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글, 수필은 경륜과 연령을 뛰어넘어 우리를 잇는 매개체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직 첫 만남 이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친자매 같은 정이 흐르고 있다.
"내는 글도 못 쓴다 아이가,"
'누구는 잘 쓰니?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딨어. 잘 쓰려고 하면 쓰기 힘든 거야 그냥 써, "
내가 쓴소리를 하면
"언니는 감성도 풍부하고 남다른 경험도 많고 쓰기만 하면 좋은 글이 쏟아져 나올 거 같아요"
후배가 위로를 한다.
"그래 내 좀 가르쳐 줘"
만날 때마다 하는 말들이다. 늘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던 어린 시절과 다르다. 매일 같은 말을 하지만 매일 처음 듣는 말 같다.
"오래 살았다 아이가 옛날 같으면 고려장 치를 나이다. 이만큼 건강했으면 됐다".
"그래 이제부터가 문제야, 그동안 건강했지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날이 얼마큼 남아있을지 아무도 모르잖아, 백세 시대라니까 30년 세월이 남았다지만 그동안 지금처럼 건강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해, 건강한 동안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수밖에는 없어,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거든,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인 것 같아 "
그녀의 말에 내가 다시 쓴소리를 하는 건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일주일 전부터 약속된 연극 관람을 까맣게 잊고 그녀는 다른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파크골프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한 신입 환영회였으니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리저리 꿰맞춰 그녀는 파크골프 모임에 참석하고 우리들은 연극을 보러 가기로 합의할 수 있었지만 그녀와의 약속은 세 번쯤 확인해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흔쾌히 그녀의 대답을 듣고 문자로 남기는 것 까지는 했건만 재차 확인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까맣게 잊고 연극을 가지 못하는 것만 서운해했다. 뮤지컬을 보면서도 우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한 배려였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편의에 의해 결정한 것만 같았다
그녀의 미소가 쓸쓸해 보였던 것도 나의 착각일 수 있었나 보다.
"아 참 그랬제, 연극 보러 간다했제, 또 잊어 뿌릿다"
우리를 만난 그녀는 진정 행복해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주고 내가 복이 많나 보다" 그녀의 말에
"그래 네가 복받을 일을 많이 하고 있잖아, 사람들이 모두 너를 좋아해"
이렇게 화답할 수 있었다.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 한다. 우리는 아마도 더 자주 이런 소나기를 만날 것이다. 비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진다는 사실을 믿어 보련다. 오늘 우리가 서로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