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글쓰기와 커피 한잔의 위로

by 우선열



새벽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해 뜨기 전 이른 시간에 깨어 있는 내가 좋다.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지금 나는 어머니도 자식도 아내도 아니다. 그저 나일 뿐이다. 곧 만물이 깨어나고 나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의 아침이 시작되기 전 내 앞에 놓인 서너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이 고요한 시간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새벽이 좋은 건지 새벽이 좋아 글을 쓰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새벽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그 시간이 좋아 새벽 기상을 감행한다.

좋아한다고 해서 쉬운 건 아니다.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고통을 참아야 하고 지루하고 힘든 고비를 넘겨야 한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새벽 기상은 결코 쉽지 않다. 겨우 눈을 떴지만 몽롱한 의식과 나른한 육체를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 새벽의 고요를, 이 시간에 깨어 있는 나를,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더 복잡하다. 내 안의 나와 싸워야 하는 일이다.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한 줄도 써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백지를 마주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막막함도 견뎌야 한다. 초침 흘러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는 순간도 있고, 시간이 잠시 멈춘 듯 세상이 문득 고요해지는 순간도 있다. 어쩌다 생각들이 술술 풀려 빠르게 글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구나’ 하게 되고 나도 놀랄 만한 문장이 만들어지고 정리된다. 무념무상의 경지, 내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그 시간의 환희가 좋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그 시간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온 힘을 기울여 정성을 다한 문장이 다시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는 글이 되어 있기도 하다. 재능을 의심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된다. ‘왜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합당한 이유는 찾지 못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로 살아 있다.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삶이 늘 즐겁고 환희에 차 있을 수만은 없다. 질곡의 순간들을 버티고 헤쳐 나가야 삶이라 할 수 있다. 삶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시인의 묘비명처럼, 속절없는 삶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한 줄을 쓰기 위해 버텨야 하는 시간이 있고, 완성된 글이라는 보장도 없다. 사는 것처럼, 사는 동안 그냥 써야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사막을 지나는 듯 막막해질 때, 오아시스 같은 위로가 필요할 때, 나는 커피 한 잔을 만든다.

커피를 만드는 일에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물이 끓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 귀중한 새벽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아깝지 않다. 새벽의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은 몽롱한 의식을 깨우고 지친 육신에 활기를 불어넣는 위로가 된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청정한 새벽 시간.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여정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위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