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은 다르다

늙어 가는 중

by 우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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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은 다르다 초록 줄무늬를 두른 수박 속은 새빨갛고, 노란 참외의 속살은 새하얗다. 대부분의 과일은 익을수록 색이 진해진다. 옛 선인들은 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는 것이 참된 어른의 모습이라 했다. 나도 언젠가 나이 들면 흔들의자에 앉아 온화한 미소를 짓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감정 기복이 심한 건 미숙한 일이라 여겼다.
공자는 말했다. “마흔이면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쉰에는 하늘의 뜻을 깨닫고, 예순에는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는다. 일흔이 되면 뜻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다르고, 세월이 흐르면 문화도 바뀐다.
요즘은 문화의 변화가 세월보다 빠르다. 가만히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노인이 되기 쉽다. 변화에 앞서가진 못하더라도, 새 문화를 익혀야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다. 나이 일흔을 훌쩍 넘겼건만 하늘의 뜻은커녕, 변화하는 세상 따라가기도 버겁다.
세월이 변했으니 사람도 변해야 한다. 노인은 더 이상 흔들의자에 앉아 미소만 지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기력도 약해지고 정신도 희미해져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이 쉽지 않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던 시절은 지나갔다.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막상 실행하려 하면 실타래처럼 엉킨다. 수없이 반복해야 겨우 하나 익힐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듯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은 한 번 서면 금세 달리지만, 노인은 설 때마다 안간힘을 써야 익숙해진다. 온화한 미소만으로는 부족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늙어서 이게 무슨 수난인가 싶지만 동전에도 양면이 있는 법. 비록 공자가 말한 대로 점잖게 늙어가지는 못해도 온화한 미소를 짓는 노년보다 배우며 살아가는 노년이 더 낫다. 늙음이 슬픈 이유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이 늙기 때문이다. 행동이 느려지고 정신도 희미해졌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이다. 가만히 있는 노년보다는 어렵더라도 무언가 해보려는 노년이 더 아름답다. 겉은 늙었어도 마음만은 젊을 수 있다.

과일은 익을수록 속이 진해진다. 나이 듦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