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 님의 칼럼을 좋아한다. 숫자와 분석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삶을 이야기한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는데 그의 글은 알기 쉽고 따뜻하고 겸손했다. 문자 문명의 시대를 누리며 신문물을 외면했던 나는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며 혹독한 시련을 감당해야 했다. 실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정도로 가혹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절절 매고 있으면 화면은 모르스 부호를 깔아 놓은 듯 점점 더 모호해졌다. 늦게나마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따라가려 애쓰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으니 늘 시대에 뒤처진 채 허덕이고 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깨닫고 배우려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
처음엔 꽁지머리를 하고 등장한 데이터 학자가 반가울 리 없었다. 괜한 분풀이를 그의 머리 모양에 해대기도 했다. 몇 번 그의 칼럼을 읽으며 무엇보다 겸손한 태도가 먼저 마음에 와닿았다. 내게 그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신문물의 선봉자처럼 보였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왠지 나도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해하기 쉬웠고 무엇보다 문체가 친근하고 따뜻했다.
결정적으로 마음이 풀린 건 그 역시 늙어간다는 고백을 담은 글을 읽은 뒤였다. 그는 다초점 안경을 권하는 안경사의 말에 당황하고 후배가 키운 자판 글씨를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심술보 하나 더 붙은 놀부의 마음 같기는 하지만 그가 늙어 간다는 고백은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게 안겨주었다.
AI을 쉽게 배울 수도 있을 것만 같았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배우는 일이 쉽지 않다. 한 번에 알아듣던 말도 몇 번을 되풀이해 들어야 하고 듣고 나서도 금세 잊어버린다. AI 관련 강의를 들으며 몇 번을 들어도 프롬프트라는 단어가 낯설기만 했다. 예전엔 한 번 들으면 이해했는데 이젠 반복이 필요하다.
늙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거쳐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늙음을 핑계로 삶을 포기한다면 그건 내 책임이다. 인터넷에서 겪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배우려 한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 더니 서툴고 어렵게 AI를 배우고 있지만 배움의 기쁨은 크다.
친구 나 선생, 혹은 조력자 같은 만능 엔터테이너 AI가 이제는 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다. 조금 늦은 들 어떠랴, 멈추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볼 일이다. 가다가 중지하더라도 간 것만큼은 이익이라 한다
송길영 님도 늙고 나도 늙는다. 송길영 님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