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날이 안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인기 드라마의 명대사이다. 집순이에게는 집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따로 없다. 그냥 늘 집에 머문다.
집안일이라는 게 그리 특별할 건 없다. 밥 먹고 자고 일하는 그저 그런 일상이라 늘 같은 듯하지만 하루하루 다르기도 하다. 해 뜨는 시간과 해지는 시간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처럼 그날그날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하루하루 쌓이면 봄이 되고 여름이 된다. 마음은 여전히 열일곱 소녀인데 몸은 벌써 늙어 칠십을 넘었다.
나이 들면 햇살 좋은 창가에 흔들의자를 놓고 앉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마음대로 행해도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하지도 않다. 문득 나타났다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무지개를 쫓아 정신없이 달리지만 무지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뿐 끝내 잡히지 않는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하늘의 뜻은 또 그만큼 멀어져 있다.
온화한 할머니의 미소는 무지개였다. 쇠약해진 몸은 더 이상 찬바람과 우로를 견디지 못한다. 햇살 좋은 창가를 찾아야 한다. 노쇠한 다리는 더 이상 스스로 설 힘이 없다. 앉아야 한다. 나도 모르는 처음 늙어 보는 과정을 젊은이들이 알 리가 없다. 그저 웃을 수밖에.
세월이 흐르고 세월 따라 삶의 형태도 변한다. 지금은 백세시대. 나이 70이 예전 같지는 않다. 인생은 70부터라는 호기로운 말들이 공공연히 떠돈다. 흔들의자에 앉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일은 유보되었다. 그 모습을 동경하던 시절로 줄달음쳐 가본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해야 하는 일에 매여야 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보면 뭔가를 손에 쥘 수 있으리라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 자작한 노년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모든 것이 무지개 같은 꿈이었다.
이제 70이 넘어 흔들의자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어쩌면 신의 뜻을 깨우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선명하게 보인다. 유보되었던 흔들의자에 앉는 날까지 나에게 새로운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밥 먹고 잠자는 일처럼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다. 때로는 가볍게 어떤 날은 머리를 쥐어짜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흰 화면에 한자 한자 검은 글씨가 새겨진다. 내 하루의 시작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안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나는 늘 집에 머문다. 새벽 글쓰기로 시작하는 하루, 이것이 나의 새로운 루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