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기온차가 크다. 이번 환절기는 조금 더 유난스러운 듯하다. 일교차가 클 뿐 아니라 평균기온도 낮았다 높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변덕이 심하다.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외출 준비를 해야 한다. 가을이면 으레 바바리코트를 향하던 손길이 두터운 패딩에 멈추기도 한다. 거리는 더 종잡을 수 없다. 반팔 셔츠를 입은 젊은이부터 겨울옷을 그럴듯하게 갖춰 입은 사람까지 있다.
이런 날씨 탓인지 마음의 온도도 왔다 갔다 한다.'나이 70인데 항심을 지켜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혼잣말을 해보기도 한다. 들어 주는 이 없는 말처럼 허망한 게 또 있을까. 천리를 가는 말이 설자리조차 잊고 만다.
환절기 탓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하기야 이런 기온차가 어찌 환절기만의 일이겠는가. 오랜 시간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해 온 사람들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못 보고 당장의 편이와 안락에 젖어 들었다. 계절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 볼일이다.
사람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되는 걸 알고 있으면서 마음은 곧잘 말에게 지고 만다. 공중에 떠다니는 말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가슴을 찌르는 일이 있다. 말 주인에게서는 이미 떠나 버린 말이다. 떠다니며 묻은 오물로 이미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심하게 과장되기도 하고 일부가 떨어져 나가 정체를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눈에 보이거나 들리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건만 속을 헤아리기보다는 겉모습에 반응하고 만다. 찬란한 진주의 겉모습만 추앙할 뿐 진주가 되기 위해 겪은 고통을 헤아리지 않는다.
내게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면 그게 어찌 혼자만의 일이었겠는가? 곁에서 돌봐준 이들의 공덕이다. 빈손으로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만큼 클 수 있도록 돌보아주고 배려해 준 이들 덕분이다. 그 과정이 쉽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다. 우여 곡절을 겪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아직 단단한 진주는 못 되는가 보다 . 떠도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는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여물지 못한 자신의 탓일 뿐.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라 한다. 삶은 완성을 향해 가는 여정일뿐 도달할 수는 없다. 도달하는 순간을 우리는 죽음이라 부른다. 삶이 끝났다는 것이다. 끝없이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이다.
오늘, 정처 없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었다면 그건 살아가는 증거이다. 조금 춥고 아플 수 있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변덕스러운 작금의 날씨도 결국 봄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환절기 탓이 아니다.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의 온도를 다스릴 이는 오직 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