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장애,다름 인정하기

by 우선열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단풍은 어쩌지?' 무심히 한마디 하고 곧 '무얼'입지?'에 생각이 미쳤다. 한동안 손길이 바빠졌다. 얇은 옷들을 제치고 도톰하고 따뜻한 옷을 찾는데 아쉬운 손길이 바바리코트에 머문다. 오늘 같은 날 입기엔 추워 보일 듯하지만 뒤로 밀어 넣기도 애매하다. 아직은 청명한 가을날이 있을 것도 같고 이젠 점점 기온이 낮아지지 높아지지는 않을 것도 같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데 ···' 혼잣말을 한다. 바바리코트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이젠 좀 춥더라도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며 찬바람을 맞는 게 멋스럽던 젊은 날과는 다르다. 찬바람이 어깨를 스치면 당장 코가 맹맹해지거나 잔기침이 나오기도 한다. 감기로 몇 날 며칠 잃아 눕기 싫으면 조심해야 한다. 미열이 있는 조금 들뜬 상태를 좋아하던 것도 젊은 날이다. 노화되고 있는 몸은 작은 온도 차이도 견디지 못한다. 초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겨우내 감기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얇은 패딩에 눈길이 멈췄다. '아직은'하는 마음과는 달리 손길은 거침이 없다. 바바리코트를 젖혀 두고 패딩 옷을 잡는다. 거리에 나서니 '조금 이른걸, 너무 수선 떠는 거 아냐' 하는 생각과는 달리 이미 패딩의 물결이다. 어색했던 기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잠시 옷장 앞에서 겪었던 갈등이 거리에 펼쳐진 듯하다. 반팔 소매 청년부터 패딩까지 거리는 철을 잃었다.

나무들도 어리둥절한가 보다. 미처 단풍 들지 못한 나뭇잎을 떨구고 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잎이 앞장선다.하긴 플라타너스는 단풍이 곱지 않고 기간도 짧다. 푸른 잎이 누렇게 바래는가 하면 곧장 낙엽 되어 떨어진다.

거리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플라타너스 잎은 단풍보다 먼저 계절을 알린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밝는 소리가' 하는 마치 플라타너스를 위한 시 같기도 한 그 시로 가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반팔이나 반바지, 배꼽이 드러난 옷을 입고 있는 젊은이들은 추위에 개의치 않는 듯하다. 추워 보이지도 않는데 괜스레 나만 걱정이 늘어진다. '감기 걸리면 어쩌누 '혼잣 말을 하다가 급기야 참지 못하고 가까이 서 있는 반바지 청년에게 말을 건네고 말았다 "춥지? 감기 걸리겠다" "아닙니다, 아직 추운지 모르겠어요, 조금 움직이면 땀이 나는 걸요" 하는 말에 갑자기 내 패딩이 거추장스러워지는 듯했다 '움직이면 '이었다

추운 날씨에 마음마저 움츠러들어 움직일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나 보다. 추위는 젊음과 늙음을 가리지 않지만 선택은 다를 수 있다. 움직이는 사람은 얇은 옷이라야 하고 움츠러드는 사람은 두꺼운 옷이 좋다.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고운 단풍을 포기한 플라타너스 같기도 하다. 플라타너스 잎은 낙엽 밟는 소리로 자기만의 가을을 맞는다 . 단풍만이 전부는 아니다.

버스 정류장 의자는 난방이 되어 따뜻하다. 반팔로 움직이는 청년과 달리 난방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서로 다른 것뿐 어느 것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바라리 코트 깃을 부여잡고 망설이는 나는 선택 장애 일지도 모른다. 사려 깊은 성격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우유부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바바리코트냐, 패딩이냐, 나는 아직도 옷장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선택장애라 할지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