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에

by 우선열


한바탕 철 이른 추위가 세상을 헤집었다.

하루 이틀은 '아직은' 하며 버텨 보려 했지만 칼바람의 위세가 등등했다

늦더위의 기세에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가을이 겨울에 쫓겼난 듯하다

단풍은 들지 못했는데 낙엽 되어 떨어지기 시작하니

놀란 나무 잎들이 한꺼번에 기염 토하듯 서둘러 단풍 옷을 입는다

그렇게 겨울로 접어드나 했더니 아직은 미련이 남은 듯 가을 햇살이 따가워졌다

하루만 더 남국의 날을 원하던 시인의 바람이었을까?

쫓기듯 내몰린 가을이 안간힘으로 버티는 입동이 되었다.

밀쳐 두었던 바바리코트를 꺼내 입는다

도심의 계절은 여인의 옷차림으로 시작된다는데

하마터면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을 맞을 뻔했다

바바리코트 대신 두터운 패딩 옷을 먼저 꺼내야 했다


단풍을 재촉하던 나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속도 조절에 들어가고

이미 떨어져 누운 낙엽들은 하릴없이 포도에 나뒹굴고 있다

'바스락' 플라타너스 커다란 잎은 낙엽 밟는 소리가 제법 크다.

이젠 소리만 요란한 종이호랑이 형국이 되었다.


'입동'의 자극이었을까?

제자리를 지키려는 가을이 안간힘을 쏟고 있다

4계절은 그렇게 오가건만 예전의 모습은 아니다.

이름만 겨울인 따스한 겨울이 오가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가고 있다.

얼음조각 위에 위태하게 서 있는 북극곰이 그림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반짝 철이른 추위에 호들갑은 떨면서 얼지 않는 겨울을 걱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끓는 물에서는 즉각 반응하지만 서서히 더워지는 물에서 익어가는 개구리 모습이다

한바탕 때 이른 추위로 혼란을 겪은 가을도 서서히 제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계절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짧아지는 가을을 실감한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더워지는 지구에 적응하는 법과 지구가 더워지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려운 과제이건만 알면서도 우리는 우선은 춥지 않은 겨울에 안도한다

더운 여름날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숨는다

도심에서 내뿜는 이런 열기가 지구를 더 뜨겁게 가속화 시키고 있다.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 형국이다

입동을 맞아 겨우 제자리를 찾은 이번 가을 한 번의 해프닝 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더 계절 같지 않은 계절을 보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단칼에 베어지는 매듭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매듭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해결해나가야 할 일이다


나 하나의 노력이 삼천만이 되고 수억 명의 지구인이 된다.

우리의 가을을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

바바리 코트의 멋은 그냥 되지 않는다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가을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