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은 짧다

by 우선열

도시의 밤은 짧다. 정확히는 불빛에 가리어진다.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난다. 도시 사람들이 불면증을 앓고 있는 이유 중 하나 일 수도 있다. 어두워지면 귀가를 서두르던 시절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어둠이 내리기 전에 거리에 네온등이 켜지고 또 다른 태양이 된다.

사람들은 각자의 불빛을 가지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추는 태양과 달리 인공 불빛은 익명성을 보장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도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출 수 있다. 굳이 귀소 본능에 충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마법의 시간들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밤이 되면 올빼미처럼 눈이 밝아졌다. 자정이 넘고 두세시가 지나도록 잠들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잠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선정적인 문구들이 부추겼다. 오래도록 깨어있기 경쟁 이었다. '삼당사락'이 구호였다.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니 태양이 별무소용이었다. 두꺼운 커튼 속에 숨어 밤 같은 낮이 되어야 했다.

가속도가 붙은 일상을 멈추기는 힘들었다. 밤과 낮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흘렀다. 광합성을 하지 못한 식물들이 시름시름 시들어가듯 젊음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리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시류에 휩쓸렸을 뿐이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큼 가고 있는지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다. 돌부리에 걸려 채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멈추라는 신호인 줄 몰랐다. 더 달리라는 채찍인 줄로만 알았다.

지쳐 쓰러질 때 쯤, 내가 서 있는 곳이 보였다. 무얼 위해 달려왔는지 모르는 피폐한 모습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비로소 밤과 낮이 구분되고 거리에 불빛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귀소본능에 충실한 시간을 되찾았을 수 있었다.

'이제 와서'라는 안타까운 시선을 견디기도 하고 "이제라도' 하는 따뜻한 격려를 받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패배자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우려 한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여전히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노여움이 일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다만 스스로 치유하려 노력해 볼 수는 있다.

그건 밤의 시간이 아니었다. 하루의 피로가 누적된 밤에는 심사마저도 어지럽다. 하루를 치러낸 피로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지친 몸에 휴식이 필요하다. 밤이 제 역할을 찾았다. 귀소 본능도 함께였다. 이젠 어둠이 내리면 인공 불빛에 현혹되지 않는다. 귀가를 서두른다. 하루의 피로를 인정하고 무사히 지나간 하루에 감사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도시의 짧은 밤에서 벗어나 치유의 시간이 되는 밤을 되찾았다. 겨울밤은 특히 길다. 충분히 쉬고 피로를 회복할 수 있다. 기쁘게 새날을 기다린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