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by 우선열

동요가 사라지고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 노래를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그런 시골에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파트에 갇혀 기껏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이 전부이다. 어쩌다 부모들이 큰 맘먹고 데려다준 놀이공원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 기댈 수 있는 고향을 잃은 아이들이 불쌍해진다.

꽃 피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옛사람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 헐벗고 굶주렸던 사람들이다. 그렇더라도 행복했던 기억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버짐 핀 얼굴로 찬물 한 바가지를 마시며 허기를 달래던 어린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면 그만 먹먹해진다. 고향은 기억일 뿐이다. 지나간 시절의 아름다운 장면을 기억하는 것뿐, 빙산의 일각처럼 감추어진 부분이 있다. 동요 속 고향에도 사시사철 꽃이 피지는 않는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꽃 피기 전 춘궁기에 굶주림을 견뎠을 것이고 폭염과 폭우에 시달리고 방안에 놓아둔 자리끼가 얼어붙는 혹한과 싸웠을 수도 있다. 꽃 피는 봄이 그만큼 간절하여 아름답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꽃이 그립지 않다. 한 발자국만 나가면 온실 속에 자란 온갖 꽃들이 제철인 양 진열되어 있다. 돈 몇 푼이면 사시사철 원하는 꽃을 구할 수 있다. 배가 고프지도 않다 "밥 없으면 빵 먹으면 되잖아?' 하는 아이들이다. 밥보다 맛있는 먹거리가 지천이다. 애타게 간절할 이유가 없다. 궁핍을 모르면 간절하지 않다. 더 이상 고향이 그리워지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이 잃고 있는 것은 고향이 아니라 그리움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을 비교적 풍요롭게 지낸 한 친구가 있다. 사춘기에 부도를 맞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 친구는 늘 고향을 그리워한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고향을 찾지만 그리움이 잦아들지는 않는다. 추운 겨울이 오면 좌불안석 고향의 바닷바람을 그리워한다. 찬 바닷물을 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인근 군부대에서 나온 누룽지를 끓여 허기를 달래야 했지만 태산 같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초라해지고 따스하던 어머니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를 한번 힘껏 안아드리고 어머니의 얼굴에 퍼지는 잔잔한 미소를 보고 싶어 한다

평생을 유복하게 보낸 한 친구는 지금 받아들여야 하는 노년이 힘들기만 하다. 늙은 자신의 처지가 남의 탓 같기만 하다. 부모형제를 원망하며 지나온 순간순간의 잘못된 것만을 떠올리며 불행을 반추한다. 고향도 그립지가 않다. 그리움이 없어서 불행한 건지 불행해서 그리움을 잊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이 동요가 사라진 것은 시대 탓만은 아닐 수 있다. 궁핍을 벗어난 시대, 간절함이 사라지니 그리움이 엷어지는 것은 아닐까? 풍요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결핍은 행복의 여부를 떠나 고생스럽기는 하다. 그 어려움을 그리움으로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행복했던 시절이 원망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세상사 요지경 같기는 하다. 그래도 마음속에 그리움 하나 품고 있으면 살아 볼 만한 세상 아니겠는가? 꽃 피는 산골이 아니라도 좋다. 아파트 놀이터의 추억이라도 그리움으로 남아 있으면 그곳이 곧 고향이다. 내 마음속 고향,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