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바깥이 좋고 밤이 좋다. 밤 외출을 즐기는 편은 아니건만 이때만큼은 예외다. 야행성 동물처럼 눈이 반짝 떠지고 날렵한 고양이처럼 민첩해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아이처럼 이게 웬 수선이람" 수줍은 아이가 사탕 사양하듯 마음과 달리 몸이 앞장서고 만다. 매스컴도 한몫한다.' 올해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대문 짝만 사진이 실린 기사로 유혹을 한다. 백화점 양대 산맥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비교 분석하는 현란한 문구에 지고 만다.
볼거리가 많은 세상이지만 유독 크리스마스트리가 특별해지는 건 한정된 시즌, 특히 연말의 정서와 맞물리기 때문이 아닐까? 한정된 시즌이 원인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 특히 나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 '기한'이라는 말의 효력에 어느 정도 둔감해져 있다.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절호의 찬스 라는것도 지나가 버라면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하느님은 한문을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 주신다'고도 한다. 모파상의 말처럼 '인생은 지나고 보니 그리 기쁘기만 한 것도 슬픈 것'도 아니고 '동양에서는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 말한다. 한정된 기한이라는 것이 '한없이 되풀이되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 인생역정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2025년 연말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연말, 70번 이상의 연말이 지나도 같은 연말은 없었다.그 유일성 때문에 우리는 '연말 앓이'를 하고 그해 크리스마스트리에 열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해마다 트리를 새로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물자가 흔하던 시절은 아니니 나무 본체는 해마다 같은 것을 썼다. 시즌이 끝나면 잘 갈무리해두었다가 다음 해에 다시 손질하여 장식품을 달았다. 해마다 같은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었건만 나무에 걸리는 소망은 달랐다. 키가 크듯 소망이 부풀어 오르던 시절도 있었고 절망으로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건만 아이들의 소망마저 져 버릴 수는 없었다.아이들의 소망이 자라는 트리를 정성껏 꾸몄다 .
다 자란 아이들은 이제 제 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든다. 변한 시절만큼 커지고 화려해졌다.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소망도 달라졌다. "나 때는 말이야" 하다가는 화석 취급을 받는다. 입 닫고 주머니만 열어야 한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지는 않지만 보는 재미는 있다. 태양보다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고 더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경쟁을 한다. 훔친 사과가 맛있다 한다. 남들이 만든 트리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즐기지 않던 밤 외출이건만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 매스컴의 유혹이 나를 향한 것은 아니련만 못 이기는 척 그러나 재빨리 밤 외출을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