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크게 한 번 외쳐 봅니다. 금방이라도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질 듯 거리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휘황한데 캐럴은 좀체 듣기 어렵습니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특정 장소를 찾던가 손수 음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점차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되어 갑니다. 이건 아마 나이 탓일 수도 있습니다. 음악 저작권 때문에 거리가 조용해지긴 했지만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이나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기대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가장 행복한 축제일 것입니다. 인생이 그리 슬픈 것도 기쁜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은 눈 오는 거리의 낭만보다는 미끄러운 길에 대한 염려가 더 커져 버렸습니다.
'까짓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입니다. 심술궂은 할망구 코스 프레입니다만 '나이 드는 게 슬픈 이유는 몸은 늙는데 마음은 늙지 않는 데 있다'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무얼 할까? 은근한 기대가 고개를 쳐드는데 때마침 전화벨이 울리더라고요 KT 전화국입니다.
"26일이 설치 일입니다만 내일은 어떠십니까?" "좋아요, 오전 중이면 됩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집니다. 자칫 무료한 휴일이 되고 말 뻔했는데 할 일이 생긴 겁니다. "이게 올해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봐" 혼잣말을 합니다. 기지국 변경 신청을 해두었거든요. 어차피 진행될 일이긴 하지만 치일 피일 미루어지는 것보다는 빨리 해치우는 게 좋습니다. 무료하게 지내기 보다는 한 가지 일이라도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내일 뭐 해? 우리 오래간만에 바다 보러 갈까?" 메시지가 떴습니다. 종종 전철 여행을 같이 하는 친구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랑 바다를 보러 간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좋아, 그런데 내일 KT에서 기지국 변경하러 온대, 오전에 온다니까 마치고 금방 출발할 수 있어" 올해 크리스마스엔 겨울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타가 크리스마스를 선물하고 간 것만 같습니다.
문득 KT 기지국 젊은 직원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는 젊은이군요. 요즘 세상에는 일하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더라고요. 52시간제라던가요? 더 이상 일하고 싶어도 법으로 묶어 놓아 일할 수 없다 합니다. 삶의 질 문제라고요. 조금 일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면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누구나 똑같진 않지요. 저마다 목표가 다를 수 있고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가 누군가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언제쯤이면 다름을 인정하는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무료할까 봐 덜컥 기지국 변경 신청을 해놓고 겨울바다 보기를 포기할 뻔한 내 처지 같습니다. 오늘 설치를 하러 오는 젊은이에게도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겠지요? 쉬기보다 일을 해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일 수도 있고 다른 날의 특별한 계획을 위해 오늘 하루를 저당 잡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늙은이가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낼까 봐 마음을 써준 건 아닐까요?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흐뭇한 상상이니 즐겨보려 합니다. 그 젊은이도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따뜻한 차 한잔 장만해야 하겠습니다. 역시 '까짓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