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기지국을 바꾸면서

by 우선열

인터넷 기지국을 바꿨다. 흔한 일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약정 기간에 잡혀 위약금을 물어야 할 때도 있고 무엇보다 집에서 쓰던 컴퓨터의 인터넷망을 바꿔야 한다. 컴맹에 기계치인 내게 인터넷망 바꾸는 일은 만만치 않다. 남들은 클릭 한 번이면 끝날 일이지만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것처럼 난감하기만 하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일인데 자칫 손끝 하나 잘못 움직였다가 낭패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다, 인터넷 시대 컴맹의 애환이다.

그동안은 아들과 함께 생활할 때 아들 명의로 해놓은 SK 인터넷망을 계속 쓰고 있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인터넷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들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게 번거로웠다. 마침 SK에서 약정 기간이 끝나 위약금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이참에 KT휴대폰과 묶어 결합 혜택도 받을 요량이었다 .

기지국을 바꾸기 위해 KT 대리점을 방문했다 .

내가 쓰고 있는 휴대폰은 갤럭시 울트라 노트 22, 512 GB짜리이다. 22년 구입 당시 최고급 사양이다. 좀 비싸지만 편하게 쓰고 싶어서 무리를 해서 부린 사치인 셈인데 사용기간이 3년이 넘으니 배터리가 빨리 닳기도 하고 처리 속도가 느려져 답답하기도 하다. 카메라 성능도 처음 같지 않게 초점이 흐려진 것만 같다. 바꾸고 싶지만 이제 260 기가쯤 쓰고 있으니 반쯤 남은 용량이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KT 대리점 직원의 '사진만 구 전화기에서 내려쓰고 다른 것들만 내려받으면 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말에 잠시 흔들렸다

그기 권하는 전화기는 가볍고 얄팍했다.

더구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펜 때문에 노트 값이 30만 원 비싸다는 설명을 들었다. 노트 기능은 언젠가는 쓸모가 있으려니 했지만 삼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기능이다. 쓰지 않는 사치로 30만 원을 낭비했나 보다. 다음번엔 노트 기능을 확실하게 익히던지 노트가 아닌 걸로 30만 원 절약해야겠다. 노트 기능이 나온 후로 계속 노트 폰을 사용했건만 이렇게 꼭 집어 기능과 가격을 비교 설명을 들은 것은 처음이다. 쓸데없이 나간 돈 30만 원 때문이라도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을 당분간 조금 더 써야겠지만 다음에 휴대폰을 바꾸게 되면 꼭 이 집으로 와야겠다.

일단 기지국만 바꾸기로 했다. 전화기 KT 알뜰폰을 KT로 옮기고 SK 인터넷 선을 KT로 옮기기로 했다. 알뜰폰은 사용료는 적지만 본인 인증 시 자주 오류가 난다. 나를 인정받는 일에 거부를 당하는 느낌이 싫어 조금 더 경비 지출이 있더라도 기분 좋게 사용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다.

인터넷 선을 바꾸며 사은품으로 공기 청정기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인터넷 선 약정을 한 바로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 날 아침 7시에 KT 직원의 방문이 있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선이 있으니 그리 급한 일은 아니었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 않은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빨리 해치우는 게 마음 편하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끼어 며칠 늦어지려니 지레 짐작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당일 출장이 가능하다는 기사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산타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일이었지만 휴일에 일하는 직원 때문에 마음이 쓰였다. 더구나 아침 7시면 이른 시간이다. 시간 외 노동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한창인데 휴일 이른 아침 근무가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기사는 정확히 7시에 전화를 하고 10분 후 도착했다.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심사가 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내 오지랖이었나 보다.

전에 사용하던 인터넷 기기를 떼어 내고 새로운 선으로 바꾸어 주며 사용하던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던 전선을 정리해 주었다. 컴퓨터와 복합기 연결도 확인해 주고 TV 작동도 점검했다. 추운 날 실외 작업까지 해야 했건만 싫은 기색이 전혀 없어 나도 마음이 편했다.다정하고 예의 바르고 일에 철저한 젊은이를 만났으니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아닌가 한다.

사은품 공기청정기는 LG 제품이다. 인터넷 설치가 끝난 2~3일 후 다시 LG 기사의 방문을 받았다. 예전과는 달리 프라이버시 존중이 중요한 시대이니 외부인의 집 방문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나는 정수기 필터 가는 일에 도움을 받는 것이 싫어 생수를 사먹고 있다. 특별히 폐쇄적인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남의 도움을 받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웬만하면 내 집일은 내손으로 하고 싶다. 내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기사들이 방문을 받는 일이 공연히 미안해진다. LG 직원 역시 상냥하고 일하는 솜씨가 재빨랐다. 제품 사용 설명까지 친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번 기지국 바꾸는 일은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감사한 일이다. 솔직히 그동안 AS 받는 일들이 쉽지는 않았다. 접수하려면 전화통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어야 겨우 통화가 되고 다시 기사와 작업시간을 잡는 통화를 해야 했다. 이번엔 새로 설치하는 것이니 AS와 다른 점이 있기는 하나 설치도 일단 결정되면 칼자루를 잡는 쪽은 기사가 된다. 뱃장을 부리면 소비자가 고스란히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불쾌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기사들의 건강한 태도가 더 좋게 보였을 수도 있다. 기지국을 바꾸면서 얼마쯤 불쾌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레짐작한 내가 부정적인 사람인 것만 같다.

이번엔 기지국 바꾸기를 잘했다. SK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친절해지고 건강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