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점검

by 우선열

지난 연말이었다. 새해맞이 계획에 조금 들떠 있었다. 예년보다 조금 소란해진 연말이었기에 새해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출간을 해보라는 선생님 권유도 한몫했다. 문방 코너를 기웃거리며 새해 계획을 담을 다이어리를 찾아 헤맸다. 정확하게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어딘가 내 맘에 드는 다이어리가 있을 것만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가 아니라 막연한 기대였다. 뜬구름을 잡으려는 무모함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이모 병원이야" 조카의 한 마디에 발걸음이 멈춰 섰다. 세상도 함께 정지되는 것만 같았다. "글은 무엇보다 진실해야 해, 진정성이 있는 글만이 살아남아 " 형부가 해주던 말이 메아리쳐 들려왔다.

형부는 불과 얼마 전 뵐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부진 체격과 의연한 태도는 간 곳이 없고 움푹 팬 볼과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형형 했고 정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명징했다. 차라리 정신줄을 놓았다면 현실을 인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종종 다가올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고 대처법에 대한 토론에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병사'도 삶의 한 과정이니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병마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철퇴를 맞은 듯 일상이 멈춰 섰다. 적어도 지금 이런 식으로는 아니어야 했다. 마지막 존엄성만은 지켜질 줄 알았다. 한치 건너인 내가 받은 충격이 이랬으니 언니나 조카들은 하늘이 무너져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황망해 보였다.

태풍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안전하다더니 언니네 가족들은 서로를 부축여가며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일사불란해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언저리에 놓인 나는 후폭풍을 감당해야 했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던 묘비명이 있다더니 어정쩡한 시간들이 벌써 보름 남짓 흘렀다. 새해가 가는지 오는지 모르는 시간들이었다. 새해 계획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는 여전히 밥 먹고 자는 일상을 계속하고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 것뿐이다. 그런 세상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맞춰갈 수는 있다. 형부도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형부의 삶이다.

내게 맞는 다이어리를 찾아 나설 게 아니라 그런 다이어리를 만드는 게 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조금 늦었지만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몰아내고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 봐야겠다. 글의 진실성을 찾아가는 지난한 일이 내 몫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