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구정이 있다

by 우선열

시간이 멈춘 듯했다.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려 버리고 싶었던 것도 같다. 철퇴로 머리를 맞은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형부의 발병 소식이 날아든 지난 연말 이후 지금까지 내 시간은 멈춰 섰다. 제야의 종소리도 새해 해돋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건만 일상은 계속되었다. 나는 여전히 먹고 자고 쓰고 때로 웃기도 했지만 기억되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이것 역시 지나갈 일이라는 건 안다. 가슴속에 화인 하나 더 새겨졌을 뿐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득 잠에서 깨듯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세류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이 될 수도 있겠다.

멈춰 선 내가 보였으니 말이다.

그게 하필 연말이었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타의였다고 해도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으니 나쁘지는 않다. 유한한 삶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마치 무한한 삶인 듯 살아간다. 이렇게 한번 멈춰 선 후라야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70년 이상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의 나는 세월이 만들어 낸 모습이다. 미완인 채로 또 얼마간 세월이 흐를 것이다. 언제 멈춰 설 것인지 아무도 모르니 그 순간이 와도 여전히 미완의 삶이겠지만,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묘비명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사는 동안에는 내 모습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연말에는 한해를 돌아 보고 새해에는 한해를 새로 계획해야 하건만 형부의 발병이 언젠간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사실이 두려웠나 보다. 사는 게 두려워졌다. 가까운 지인일수록 상처가 큰 법이다. 이렇게 누군가에 투영하여 나를 보며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임을 깨닫는다. 형부의 회복이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어 본다. 내가 일상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완인 줄 알면서도 완성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이 삶이다. 연말과 새해가 속절없이 지나가 버린 듯하지만 잠시 쉴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도약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타산지석 삼을 수는 있다. 우리에겐 구정이 있다. 오는 구정은 형부의 회복 소식과 함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