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참 무상 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만다.
빠른 세월이 아쉽다거나 안타까워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세월의 덧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열흘 이상 지났건만 내 시간은 여전히 연말에 머물러 있다.
전쟁 포로 같은 무력감이랄까?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없건만 나는 세월에 붙잡혀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
여전히 밥 먹고 잠자고 때로 웃기도 하니 행동의 제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신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라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관망만 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아는 만큼 행동할 수 있다면 삶이 이토록 무기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일도 겪은 바 있으니 웬만한 일은 그러려니 눈 감고 넘어갈 만한 나이이건만
다가올 일이라는 걸 번연히 알고 있었던 일이 이토록 새삼스럽다.
예견하지 못한 일은 아니지만 때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느닷없이 뒤통수를 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의 무상함만 소용돌이치고 있다.
언니네 가족은 의연하게 간병을 감당하고 있다.
고요해 보이지만 고요할 리 없다
언젠가는 태풍의 언저리에서 슬픔을 감당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아픔은 아니다
삶의 한 과정이니 겪고 넘어 갈 수 밖에는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나는 지금 주변인에 머무를 수 밖에는 없는 처지이다
폭풍의 눈은 오히려 안전하다.
주변에서 모진 비바람을 견뎌야 한다.
당사자 일때는 모르던 일이다.
주변인이 되고야 비로소 태풍의 눈을 지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변인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아마 그건 내 설움일 수도 있다
그때 당사자인 나는 그런 감정의 사치조차 버거웠다
현실을 감당해야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황망한 시간을 보내며 고래 한 마리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잠잠해지는 순간은 있지만 고래는 여전히 내 가슴속에 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평소에 잠잠하던 고래는 이따금 자맥질하듯 솟구쳐 오른다
크기도 모양도 다르지만 그때마다 다른 그리움이다
지금 나는 주변인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잠시 시간이 멈춰도 좋다
세월의 무상함이 야속하지도 않다.
다만 고래는 오래 수면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일상은 계속될 것이고
멈춰 섰던 시간이 치유의 시간이 되어 고래를 잠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하필 연말연시여서 더 오래 남을 수도 있겠고 고래의 자맥질이 더 요란할 수도 있겠다.
큰 파도가 지난후 바다는 더 평화스러워진다.
보름 이상의 시간들을 관망으로 보냈다 할지라도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그 시간이 시금석이 되어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새해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