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내가 외고 있는 카피 중 하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한다. 결과에 상관없이 미련이 따르는 일이 선택이다.
'짬짜면'이라던가. '프라이드 반 양념 반' 하는'메뉴가 유행하는 걸보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두얼굴의 사나이'라든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회자 되는 것도 그런맥락이리라
사람들은 누구나 선택 앞에서 갈등한다. 소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믿고 끝까지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생육신과 사육신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절개가 존경스럽기는 하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삼대를 멸하는 벌을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한번 한 결정을 지켰다. 다만 안타깝기는 하다.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그런 기개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좀 많았겠는가? 더구나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 났을 그들 후손들까지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 선택 하나에 조선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황희 정승이 좋다. 부뚜막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다는 처세.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것 중에서 함께 옳은 것을 찾아 내면 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한몸이지만 좋은 면만을 뽑아내면 짬뽕과 자장면, 프라이드와 양념 치킨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다
작년 봄, 베란다에 히아신스 꽃이 예쁘게 피었다. 향기도 좋아 꽃이 피어 있는 동안 나도 활짝 핀 기분이었다. 꽃이 진 후, 화분에 구근이 남아 있었다. 버릴 것인가 보관할 것인가 선택을 해야 했다. 구근이니 다시 꽃이 필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고 꽃이 피지 않게 개량된 종들이 대세라는 말도 들렸다. 꽃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시대의 흐름도 고려 해야 했다. 애지중지 보관했다가 개량종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그냥 베란다 구석에 쳐박아 놓고 잊고 말았다
새해맞이 대청소를 하던 날 베란다 구석에서 수상한 초록색이 발견되었다. 버려진 히아신스 구근에서 아기 손톱처럼 작은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할렐루야' 순간적으로 머릿 속에서 팡파르가 터지는 것 같았다. 생명의 경이로움이었지만 감격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베란다 구석에서 돌보는 이 없이 혼자 튼 새싹이 가여워졌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잘 자라도록 보호해 주어야만 했다. 식물키우는 내 솜씨를 믿지는 못했지만 정성껏 키워보리라 다짐했다. 두송이 였건만 싹의 모양은 달랐다. 한 구군에서는 삼각형모양의 싹이 돋고 있었고 다른 구근에서는 아기 이빨 돋듯이 몇개의 싹이 그만그만 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설픈 내 솜씨에도 잘자라던 싹중 삼각형모양이 1.5Cm 쯤 자랐을 때였다. 싹 가운데서 수상한 푸른색이 포착되었다. 설마? 작년에 피었던 히아신스꽃과 같은 색이었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엄동 설한 아닌가? 제대로 보살피지도 못 했는데 꽃이 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반신반의 지켜 보았다. 푸른 색은 조금씩 천천히 번지듯 커져가더니 마침내 꽃이 되었다.
히아신스 꽃은 한송이 한송이가 피어 커다란 한송이를 이룬다. 한송이가 피고 또 한송이가 필 때마다 안타까웠다. 작은 키에서 어떻게 여러송이 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서너송이 예쁘게 피다가 결국 꽃은 지고 말았다. 아기 이빨처럼 우르르 돋던 싹은 아주 조금씩 크다가 거의 성장을 멈춘 듯하다. 피려고 안간힘을 쓰다 진 꽃과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는 새 싹은 결정하지 못한 나의 미련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나는 결정하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을 후회하고 있다. 그 때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해주었다면 히아신스는 철 모르게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제 철에 태어나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할 수 있었으리라.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선택의 책임이 무겁기만 하다.
지금 애닮기만 한 사육신의 삶을 폄하하는 사람은 없다. 선택에 책임을 진 아름다운 자세로 영원히 추앙받을 것이다. 선택했으면 최선을 다할 일이다. 꽃중의 꽃 장미와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풀꽃 중 어느것이 예쁘다고 한마디로 정의 할 수는 없다. 장미는 장미대로 야생하는 야생화대로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 다르다. 장미는 장미의 역할이 있고 풀꽃은 풀꽃의 역할이 있다. 선택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히야신스는 바록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겠지만 겨울에 싹틔우고 필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내었다. 나는 한 순간 선택을 미루고 결정 하지는 못했지만 이 겨울 히야신스로 인해 충분히 행복했다. 물론 안쓰럽고 미안하기는 하다. 죄책감이 들어 시든 꽃잎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한다. 위로가 있다면 겨울에 핀 내 히야신스가 비록 제 수명을 다하진 못했지만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웠고 그 꽃은 내 가슴 속에는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짬짜면 같은 두가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내고 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후회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해 결정된 일을 하다보면 짬짜면의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 잠시 피었다 진 히아신스에 죄책감과 행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나는 선택에 관한 한 황희정승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