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좋아한다.'한강이 있는 서울에 살아서 행복하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탄 후부터는 한강이 더 자랑스러워졌다.작가 한강도 좋고 도도히 흐르는 한강도 좋다. 전후 우리가 이뤄낸 한강의 기적도 좋고 노벨상의 쾌거를 이룬 한강의 기적도 좋다. 제3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 수 있다.
동작 한강공원은 내가 여름에 자주 가는 한강 공원이다. 전철역에서 접근성이 좋고 비교적 자연상태를 유지한 한강 공원이라 쉬기에 좋다. 유람선이나 기타 볼거리가 많은 곳은 놀기엔 좋으나 내게는 자칫 피로감이 몰려올 수 있다.
동작 한강공원은 특히 여름 오후가 좋다. 시원한 강바람이 끈질긴 여름 더위를 잊게 하고 여름날 긴 해가 미련을 못 떨쳐 차마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하늘과 강물을 붉게 물들이며 작별을 고하는 모습은 여느 드라마 못지않은 감동을 안겨 준다.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비법이 된다.
혹한의 추위에 문득 한강 공원이 그리워졌다."피천득 산책로에서 허밍웨이를 지나 동작 한강공원까지 연결된 산책 코스를 알아요" 후배의 말 한마디가 기폭제였다. 새해 들어 가장 추운 날 우리는 한강 산책을 감행하였다.
피천득 산책로를 시작으로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허밍웨이길을 지난다. 여름처럼 콧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다.콧등이 얼어붙는 추위였다. 의연하게 서 있는 나목이 위로가 되었다. 나뭇잎과 꽃, 열매, 가진 것을 모두 내려 놓고도 당당할 수 있는 의연함이 대견하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봄이 되면 잎과 꽃을 피워낼 것이다. 찬사는 그들이 받지만 보람은 나무뿌리와 가지의 몫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지혜이다 .
어깨가 움츠러들고 두 뺨이 얼얼해지고서야 우리는 동작 한강공원에 닿았다. 얼어붙은 개천을 보며 동작 노을 카페를 찾았다. 여름엔 마뜩지 않던 둥그런 회색 건물이 반갑기만 하다. 우리의 언 몸을 녹여 줄 차 한 잔이 간절했다. 지난 여름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더위에도 카페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의 유혹도 강바람의 쾌적함을 이기지 못했다.'자연을 사랑한다'는 치기도 조금은 섞였을 것이다.
실내는 기대를 저 벼리지 않았다. 따스하고 안온했으며 사방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었다. 바닥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것과는 달랐다. 멀리 내려다볼 수 있었다. 위치의 철학이다. 서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보는 범위가 달라 질 수 있다.내려다보는 쾌감은 정면에서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경지였다. 정복자의 쾌감이 이러할까? 굽어살피고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든다.
따스한 생강차를 주문하고 우리는 따듯한 물도 부탁했다. 세 잔의 따듯한 물도 함께 왔다. 차 값은 사악했으나 불만스럽진 않았다. 마땅히 지불해야 할 가격 같았다. 다만 내려다보는 조망에는 그만한 가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했다. 내려다보는 뷰도 한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따로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뷰였으면 좋겠다. 아름다움을 누리는 기회조차 빈부의 차별이 있다는 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제3 한강의 기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