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길에는 칸트 동상이 있다

by 우선열

양재천 산책길에 칸트를 만났다. 서초구청에서 만든 칸트 동상이다. 칸트 철학이 쉽지는 않지만 어려운 이론에 비해 그의 명성은 친근한 편이다. 산책에 관한 그의 일화 때문일 것이다. 칸트는 새벽마다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여 동네 사람들은 칸트가 지나가는 시간에 시계를 맞추웠다 한다. 그 길은 지금도 '철학자의 길'로 불릴 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칸트는 몸의 규칙이 무너지면 생각의 질서도 무너진다고 생각하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불편해도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 혼자하는 산책이었다. 대화가 사유의 흐름을 끊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단 한 번 예외는 있었다. 루소의『에밀』을 읽다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산책 시간을 놓친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같은 난해한 책도 산책길에서 영감을 얻은 건 아니었을까? 칸트의 사유는 천재적인 번뜩임이 아니라 반복되는 걸음에서 자란 것은 아닐까?

양재천에서 칸트를 만나며 산책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금년 들어 최강 추위라는 차가운 날씨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칸트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산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산책의 즐거움을 알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나는 아직은 칸트처럼 혼자 하는 산책보다는 대화를 나누는 산책 길이 좋다. 혼자 하는 사유보다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 사유의 폭을 넓혀 볼 수도 있겠다고 위로 한다. 솔직히 혼자 하는 산책에 매료된 적도 있었다. 그 호젓한 경지를 잊지는 못하지만 범인에게는 운동화 끈 매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그어려운 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아직은 혼자하는 산책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미 그 즐거움을 알고는 있다. 친구와의 산책 길에서 쌓인 내공이 혼자하는 산책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날이 올수도 있지 않을까? 산책으로 내 사유가 깊어져 대표작을 써낼 수 있는 그날이라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나는 홀로 양재천 산책 길을 걸어 칸트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