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추위는 추위도 아니야. 옛날에는 얼마나 추웠니,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곤 했어, 윗목 자리끼가 얼어붙었잖아",
"입성도 변변치 않았지, 무명 천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들었어, 그나마 물려 입은 옷들이 많아 여기저기 기워 입어야 했어, 요즘도 짜깁기 하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겨울이 되면 우리끼리 모여 앉아 나누는 이야기 들이다. 앞뒤가 바뀔 수는 있어도 누가 먼저 시작하던 내용은 늘 똑같다. 애들 앞에서는 하지 않는다. '꼰대'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고조선 시대에도 '요즘 애들은 '이라는 말이 있었대, 우리도 지나고 나니 그리워지는 것들이잖아, 당시엔 몰랐던 것들을 나이 들어 깨닫게 되고, 애들도 언젠간 우리가 하던 말을 기억해 낼 거야'
이건 혼잣 말이다. 친구들 간에도 이 말은 금기어가 된다. 자칫하면 논쟁의 소지가 되고 사지선다에 익숙한 우리들은 논쟁에 약하다. 자신의 주장만 하다가 언성을 높이고 만다.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는 해도 소용없고 해봤자 듣지도 않는다'는 편과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듣기 싫은 이야기도 해야 한다'는 편으로 나뉘다가 니편 내편이 되어 언성을 높힌다.
젊어 한때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에 반발하며 꼰대 세대를 비판해 보지 않는 청춘이 있을까?. 그들이 나이가 들면 '요즘 애들은 '하기 마련이다. 하긴 과거와 요즘이 같아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지기는 했다. 오늘 아침엔 AI끼리 소통하는 SNS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6개월마다 세대차가 난다는 말을 인정해야 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이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물리적 추위도 약해졌겠고 난방시설이나 입성이 좋아져 추위에 강해졌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옛날 추위를 기억하지만 요즘 세대는 지금의 추위를 감당해야 한다. 남의 눈에 들보가 내 눈에 터럭만 못하다 한다. 지난 추위가 아무리 혹독했다 한들 지금 당면한 추위와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은 지금의 추위를 감당해야 한다. 다만 내 눈의 터럭은 볼 수 없지만 남의 눈은 들보는 보이기 마련이다. 남의 눈에 들보를 보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역사가 기록되는 이유이다.
요즘 내 기억을 흔드는 겨울 추위는 조금 뜻밖이기는 하다. 전에는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던 기억인데 갑자기 떠올라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니와 단둘이 철길을 걸어가던 기억이다. 햇살은 퍼졌지만 겨울 햇살은 매서운 바람 앞에 힘이 없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찬 기운에 몸이 움츠러드는 듯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목도리를 풀어 내 목도리 위에 다시 감아주셨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기억만 남아 있을 뿐 왜 이모 댁에 갔는지, 이모 댁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사람에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는 속성이 있다 한다. 나는 그날 어머니 목도리의 따뜻함만 기억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올해 나는 두 개의 목도리를 사들였다. '이젠 정리해야 할 때야, 있는 것도 정리해야 하니 더 이상 사들이면 안 돼' 시시 때때 다짐했건만 내 추위를 막아 주는 건 목도리뿐일 것만 같았다. 10개가 넘는 목도리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게 매어주시던 긴 목도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세월이 변하고 난방시설이 좋아지고 겨울이 따뜻해졌지만 내 추위를 막는 방한용품은 어머니의 목도리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