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2월 문예살롱 모임에서 미술 평론가이자 인문학 강의를 하는 유 혜선 교수의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강의를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인문학 강의이기도 했지만 유헤선 교수의 박학다식하고 열의에 찬 강의로 한 시간이 찰나로 여겨지는 충만한 시간이었다.
피카소, 칸딘스키 등 대중이 알만한 화가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그녀 특유의 관점을 잃지 않아 그림을 보는 다른 혜안이 생기는 듯했다. 모처럼 지식욕이 마구 폭발하여 20년은 젊어진 것 같다.
특히 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였다. 매스컴에서 그녀 특유의 고통스러운 그림 (자화상)을 접하고 궁금증이 일고 있던 참이었다. 46살에 요절한 그녀의 처절한 삶에 대해 대한 동정심도 한몫했다
사고로 등에 쇠뭉치 박고 누워 수십 번의 수술을 해야 했던 그녀의 고통에 대해 감히 짐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에서 얻는 위안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내 고뿔을 다른 사람의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에서 위로받는 이기적 심보였음을 반성한다
그녀의 두 번째 고통이라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 그녀의 친 여동생과 불륜을 저질렀던 후안무치의 사내를 사랑했던 여인의 고통을 감히 안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녀의 심리적 고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런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그의 치명적 매력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잠재울 수 없었다.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라는 시구절이 떠올랐다. 사랑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유혜선 교수가 보여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부상당한 사슴'이었다. 아홉 개의 화살을 맞고 피를 철철 흘리는 사슴의 머리는 프리다 칼로였다. 표정은 꼿꼿하게 정면을 응시한다. 고통에 맞서는 그녀 자신의 모습이다. 프리다 칼로가 고통스러운 삶을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자신을 표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객관화하여 자신만의 고통에서 벗어 나는 치유이다.
유혜선 교수는 법학 경영학을 전공하고 유통, 광고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그녀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은 이런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직시하고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결과는 아닐까? 이제 실용성이 아닌 문학적 향기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늘그막에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을 통찰할 기회를 가진 나도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