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뒤늦게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내가 많이 듣는 말이다. 백세시대 라지만 길어진 삶은 은퇴 이후에 몰려 있다. 노후 준비를 넉넉히 해놓은 사람이라면 축복이지겠만 그렇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재앙일 수도 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라며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다른 재능이 있는 일도 아니고 따르는 보상도 있는 것도 아니며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 일이다. 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궁색한 대로 '내가 하고 싶은일'이라고 써보면. "왜?" 가 고개를 쳐든다. 노후 준비도 안된 내가 왜 하필 돈이 안 되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현실적인 변명은 있다. 젊은이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세상에 이 나이에 돈이 되는 일자리를 찾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쯤 될 것 같다. 무능한 내게는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다.
노후 1계명이 건강과 자립이지만 두 번째는 외로움도 있다. 나는 노후 외로움을 극복하는데 글쓰기보다 좋은 일은 없다고 본다. 글쓰기는 언제 어디서든 혼자 할 수 있고 혼자 해도 결코 외롭지 않다. 글을 쓰면 내가 알지 못했던 숨어 있는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같은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 낸 것도 칸트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자기가 동네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미국 금문교에 쓰인 낙서까지 알고 있었다 한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가 의문은 있다. 다만 글의 영향력은 믿는다. 지구 저편의 한 사람이 금문교에 자신의 사연을 쓰고 칸트가 그 글을 읽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쓰는 이는 낙서 수준의 사소한 글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알아가는 정보가 된다. 진솔한 글은 누군가의 가슴에 닿기 마련이다.
기왕이면 많은 사람에게 빨리 닿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세상 어디에선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 될 수도 있겠다. 때에 따라서는 최선보다 나은 차선도 있지 않을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며칠 전 문학상 시상식에서 고려대 민용태 교수의 축사를 들었다.
"문학은 내 안의 신이 다른 사람의 신과 만나는 것이다"라는 한마디가 심금을 울렸다. 이 한마디가 내 글쓰기에 한 좌표가 될 것 같다. 길어진 노후의 차선책으로 택한 글쓰기에 나침판이 되어 줄 것도 같다. 내 안에 숨은 신을 찾아내어 누군가의 가슴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신과 교류하는 일,그 엄청난 일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목적지까지 못 갈수도 있겠지만 간 것만큼은 이익이라고 편하게 마음먹는다. 나의 글이 노후 외로움을 극복하는 선한 영향력이 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를 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